후회와 실패는 인간의 특권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로마서 7:15)
경제학의 흐름을 잡고 있는 신고전주의학파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시장경제가 돌아갈 것이니, 정부의 개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말 합리적인 존재일까?
MBTI가 MZ세대에 국룰로 자리잡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무조건 MBTI를 묻는 것이 당연해졌다. MBTI는 정말 나를 설명해주는 도구인가? 재작년 제대로 MBTI를 검사했던 적이 있었다. ENFP가 거의 90%씩 나왔다. 신기할 정도로 한쪽의 유형으로 치우쳐있었다.
'스파크형의 ENFP는 사람만나는 걸 좋아하고, 창의적이며 통통튀는 유형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더 많이 얻곤 한다. 16가지의 성격 유형 중 하나로 나를 다 설명하기엔 나는 너무 복잡한 존재이다.
이토록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이 정말 합리적인 존재일까?
'집사부일체' 정재승교수 편에서, 정재승은 패널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나 한다. 6명의 사람들 중 둘씩 짝을 지어 한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그 돈은 너의 돈이니 마음대로 사람들과 나눠가지던지, 원한다면 혼자 다 가져도 좋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합리적인 것은 무엇일까?
5명의 패널들 모두 선택이 달랐다. 누구는 반절을 떼 주기도 하고, 6:4, 7:3으로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9:1로 나눈 사람도 있었는데, 1을 받은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며 받지 않았다.
정재승 교수는 돈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선 최대한 본인이 많이 갖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돈을 가진 사람의 선택이 무엇이던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령 그것에 10:0일지라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착하게 보일 수 있으니.
그러나 5명의 패널들 중 합리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1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고 정의하기엔 인간은 지극히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며, 관계적이다.
습관을 고치고 싶거나, 다른 습관을 들이고 싶을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다.
절대로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만큼 나약한 것도 없으니까.
대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새벽에 일찍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어야하는데 자꾸만 영상을 보느라 잠자는 시간을 놓쳤던 적이 있다.
아무리 결심하고, 다짐해도 영상만 보다보면 잠드는 시간을 자꾸 놓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택한 것이 잠금앱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잠자기로 설정해 놓은 시간 10분 전부터 앱이 자꾸만 알려준다.
'폰 잠금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폰 잠금까지 5분 남았습니다'
숫자가 줄어드는게 아쉬워서 정해놓은 시간이 되기도 전에 폰을 끄고 잠을 잔다.
인간은 이토록 불완전하다.
삶이 단 한순간에 뒤집어진 바울 마저도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며 절망하지 않는가.
마음은 율법을 지키고 싶은데,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신은 이런 불완전한 존재들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경제학자인 장하준은 말한다.
불완전한 인간만이,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느 길이 최상의 선택인지를 항상 알고 있는 완벽한 인간보다,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길로 갈지라도 불안하고 흔들리는 인간에게 더 마음이 간다. 우리는 잘 프로그램된 로봇이 아니라, 지극히 복잡한 인간이니까.
바보 같은 선택, 비합리적인 길로 걸어가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만의 특권이다.
우리의 선택이 꼭 최상의 선택일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하지만 우리는 후회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남들이 다 가봤다는 맛집만 찾아가고, sns에서 증명된 것들만 찾아간다.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
후회와 실패는 인간의 특권인데, 우리 사회는 실패를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의 것으로 만든 것만 같다.
가까이에서 보는 청소년들조차 실패를 굉장히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본인이 잘 하는 일만 하고 싶어하고, 새로운 일이나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일은 시도하는 것조차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삶은 그때부터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굉장히 많아질테니까.
'아니면 말고'와 '그럴수도 있지'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봐서 아니면 말고,
해봤는데 안됐네? 그럴수도 있지...
불완전한 우리에게 신은 그렇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데,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나에게, 너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을 품을 수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