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길을 잃는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막다른 길이기도하고, 잘못 들어서기도했다. 그럴때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거나, 닮고 싶은 이가 먼저 걸어간 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이 길이 맞는 길이겠거니 하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 역시 그랬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를 때, 그를 만났다. 태초의 지배자인 혼돈이 찾아와 겨우 세운 질서를 무너뜨렸을 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혼돈과 맞섰다.
그는 분류학자다. 그가 분류학자가 된 것은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 그는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을 찾아 관찰하며 이름을 붙였다. 청교도 부모에게 쓸데 없는 짓을 한다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그는 들풀, 잡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없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날 우연인지, 운명인지(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우연이란 건 없다) 그는 한 섬에서 주최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물고기를 관찰하는 분류학자가 된다. 그렇게 평생 물고기를 수집하고, 모으며 혼돈과 공허에 질서를 부여해갔다.
어렵사리 세운 질서 엎에 혼돈은, 자신이 태초의 지배자라는 듯, 보기좋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질서를 깨부순다. 벼락과 지진. 두 차례의 대 혼돈은 정갈하게 세워져있던 모든 질서를 뒤집어 놓았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창세기가 뒤흔들렸다.'
여기서부터 나의 눈은 더욱 말똥해졌다. 어렵사리 세운 질서가 뿌리째 흔들렸을 때, 나는 고통스러워했고, 절망의 심연으로 내려갔고, 주저 앉은 채 떨리는 손을 붙잡을 뿐이었다.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혼돈 앞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냥 걸어갔다. 아니 더욱 강하게 걸어갔다. 지진으로 물고기 표본에 붙인 이름표가 떼어지자 물고기에 직접 실을 꿰어 이름표를 붙였다. 개인의 고통 앞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더욱 강박적으로 수집해가기 시작했다. 폭발물을 설치해 물고기가 튀어나오게 하고, 산호를 망치로 두둘겨 물고기를 꺼내고, 독약을 뿌려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까지 모조리 꺼냈다.
강박적으로 물고기를 수집하며 질서를 세우는 동안 그는 열렬한 우생학자가 되어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또 다시 길을 잃은 느낌이다. 그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이 고통을 끝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며칠을 고민했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부위를 잡고 걸으며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세기 1:1-2)
태초에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은 '혼돈'이다. 어쩌면 이 세상의 본질적인 지배자는 '혼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혼돈이 '일어난다면'을 고민할게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를 고민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일어나야할 혼돈이라면, 맞서는 것보단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린 결코 혼돈을 이길 수 없으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혼돈에 맞섰다. 몇차례고 찾아오는 혼돈 앞에서 더 강해졌다. 혼돈과 맞설수록 자신이 혼돈 그 자체가 되어갔다. 강박적으로 물고기를 수집하고,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고 가리지 않았다. 그의 눈엔 더이상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세워야하는 질서 뿐이었다. 그가 소중해마지 않았던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은 번식 능력을 끊어내야 하는 열등한 생물로 낙인찍혔다.
어쩌면 그가 혼돈 앞에서 더 강해졌던 것은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혼돈 앞에 강해지는 건, 답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고통스러워하자. 아파하자. 벌벌 떨리는 손을 잡으며 절망의 심연에 들어가자. 그것이 혼돈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혼돈 안에 있진 않을 것이다. 신이 질서를 세우셨듯, 우린 다시 혼돈 안에서 질서를 세워갈 것이다.
이 책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 과학, 스릴러, 철학, 에세이, 전기 등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간다.
인간이 세운 질서가, 과연 진리일까?
책장을 펼치는 동안에는 혼돈 앞에 선 인간에 대해 고민했다면,
책장을 닫고는 위의 질문 앞에 한참을 서성였다.
책은 계속해서 묻는다. 인간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진리일까.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열렬한 우생학자로서의 죽음을 택한 그의 말년도 생각해본다. 별을 사랑해 이름에 별을 넣었던('starr') 한 소년이 천천히 그리고 강하게 무너져가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사랑은 끝이나고, 증오만 남았다. 사랑하는 자연에게 모든 것을 몇 차례나 빼앗긴, 한 무기력한 인간의 증오. 그것이 우생학이 아니었을까.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다윈의 말이다.
자연은 우리를 함부로 규정하거나, 일반화하지 않는데, 왜 우리는 자연을 쉽게 일반화하고 비약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우등과 열등을 구분하는가. 참으로 똑똑한 인간의 비열함 앞에 몸이 떨린다.
오래도록 듣자. 들어야한다. 쓸모 없는 것들의 이야기를,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의 이야기를.
내 입을 닫고, 그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