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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Apr 30. 2023

미용실을 가기 싫어하는 이유

일상


'많은 사람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다.  특히 머리는 그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주요 포인트다. 동네 주변에 크고 작은 미용실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찾는 분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두 아들 역시 마음에 드는 샵을 찾아 커트와 펌에 적지 않은 돈을 쓰고 만족해한다.  아내도 늘 거울을 보며 고민한다. 커트를 할까 펌을 할까라고.


나는 외모에 대해 어릴 때부터 포기했지만 단정함 만은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자라서 귀를 덮으면 고민을 시작한다. 아내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보고 잔소리를 한다. "당신 언제 미용실 갈 거야?" 나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다가 장발이 되기 일쑤다.  키도 작고 목도 짧고 머리도 큰데 머리카락까지 많이 자라면 내가 봐도 지저분해 보인다. 결국 이때쯤 되면 미용실을 찾는 용기를 낸다.


내가 왜 미용실을 부담스러워할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도, 미용사님이 불친절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몸이 힘들어서다. 미용실을 가기 위해서는 일단 산소기를 챙겨야 한다. 산소기는 어깨 끈에 맬 수 있게 되어 있지만 혼자 다닐 때는 배낭에 넣어 다닌다. 산소기를 매고 케뉼러를 코에 꽂고 다니는 나를 보고 주위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해서다.  산소 콧줄인 캐뉼러만 가방 밖으로 꺼내서 코에 걸고 마스크를 쓰면 대부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산소기는 약 2kg 정도 되는데 연약한(?) 나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무게다. 특히 허리가 좋지 않은 내가 많은 시간 무거운 것을 어깨에 메고 있으면 이후에 통증으로 나타나 고생을 많이 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피하는 편이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단골 미용실에 도착했다. 미용사님은 반갑게 맞아 주시고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미용사님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어린이가 이발할 때 사용하는 키높이 방석을 자리에 놓아주었다.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은 산소기를 꺼서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산소기의 콧줄이 노출되면 미용사님이 일하실 때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발 중에는 최대한 들숨과 날숨으로 호흡을 조절하지만 산소포화도는 90 이하로 내려간다. 보통 사람들은 위험할 수 있는 수치지만 나는 몸이 익숙해서 인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문제는 뒷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고개를 숙여주세요.'라고 말할 때다. 목이 짧고 가슴이 나온 상태라 머리 숙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면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이뻐지려면 감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아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안내를 받았다. 머리카락을 모두 다듬고 난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을 때도 키높이 방석을 놓고 뒤로 누워야 한다. 어릴 때 다녔던 이발소는 뒤로 눕지를 못해서 머리 감는 것은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감았는데 요즘은 머리를 감고 말리고 올 수 있어서 좋다.


남들은 머리카락을 좀 더 이쁘게 관리하기 위해 염색도 하고, 펌도 하고, 커트도 한다.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나는 50년 넘게 짧은 머리를 고수해 왔다. 그 이유는 한 가지뿐. 자주 미용실을 가지 않기 위해서다. 오늘 이렇게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잘랐으니 두세 달 정도 머리카락이 뻗칠 때까지 미용실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머리를 말리고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미용사님이 나를 불렀다. 좀 도와 달란다. 한국으로 여행 온 동남아 여행객 가족이 미용실을 찾았는데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은 먼저 오셔서 파마를 끝내셨고 시간 맞춰 따님이 왔다. 파마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데 소통이 되지 않으니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순간 당황했다. 50년간 영어를 잘하기 위해 몇 차례 도전하다가 결국 포기한 영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주변에서 어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용기를 내고 입을 열었다. 


"캔유 스피크 잉글리쉬?"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 하던 따님이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소통은 됐다. 비용을 지불하고 두 자매도 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 손님이 많아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용사님이 1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니 호텔에 가 있다가 다시 오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그분들도 그러겠다고 했다.  상황이 정리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에 나도 미용실을 나섰다.  입구에서 그들과 다시 만났다. 고맙다며 환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이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많다. 나에게는 집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부담이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용기를 낸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비가 많이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걷는 내내 호흡이 힘들지 않았고 이발하는 동안에도 숨쉬기가 어렵지 않았다. 지저분했던 머리도 단정해지니 기분이 좋다. 돌아오는 길에 이름 모를 여행객을 도와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 모든 것이 집을 나섰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작은 행복이었다.


누구에게나 두려운 '집 밖'이 있다. 특별한 경험, 소소한 행복은 안전함을 포기하는 작은 용기를 낼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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