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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01. 2023

나는 매일 지각한다

직장생활



나는 주중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다.  몇 시에 자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한다. 보행 중 의료용 산소기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더라도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으므로 출퇴근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가장 빨리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7시. 첫 차에 배차가 된다고 해도 집까지 오는 시간이 있으니까 어느 차고지에서 출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진다. 나의 집과 가장 가까운 차고지는 용산 차고지, 하지만 항상 이곳으로 배차되지 않는다. 사직동, 종로, 마포차고지가 다음 순서로 많이 배차된다.


첫 차가 배차 될 경우 차고지에 따라 7시 15분에서 7시 30분까지 탑승 시간이 달라진다. 드물게 첫 차 배차가 되지 못할 경우에는 탑승 시간이 8시를 훌쩍 넘을 때도 있다. 나는 아침 출근 준비를 한 후 초조하게 배차 문자를 기다린다.  다행히 첫차가 배차되어 7시 5분쯤 알람 문자가 오면 '오늘은 크게 늦지 않겠구나 ' 안심하고 휴대용 산소기를 챙긴다. 요즘은 차량 위치를 어플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차량의 위치를 파악해서 도착 즈음에 미리 집 앞에 나가 기다린다. 기사님의 대기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집에서 회사까지 승용차로 약 40분 소요된다. 운 좋게 최대한 일찍 탑승할 경우 출근 시간 8시에 겨우 도착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도로 사정에 따라 대부분 8시 20분쯤 되어야 회사에 도착한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한 매일 지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최근에는 차량 대수를 증차해서 첫 차에 배차가 되어 30분 이내의 지각만 하고 있지만 코로나 시절 이전에는 번번이 8시 이후 배차를 받아 1시간씩 지각하기도 했다.




나는 지각 출근에 대해 배려해 주는 회사에 감사한다. 장애인에 대해서 특별 대우를 하는 것 또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 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퇴근이 항상 늦다. 우리 회사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퇴근 시간에는 장애인콜택시가 콜 신청 후 1~2시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이 시간에 야근할 수 있어서 좋다.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한 만큼 더 남아서 일을 하는 것은 동료들에 대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출근 시간이 많이 늦을 경우에는 콜 신청을 늦게 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나 바로 배차가 돼서 빨리 퇴근하게 될까 봐 말이다.


만약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복지 정책이 없었다면 나의 직장생활 지속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산소혈중농도가 70 이하로 떨어진 상태로 지하철을 탔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물론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나 같은 장애인은 일반 택시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매일 4만 원 가까운 왕복 교통비를 지불하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근로 장애인은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나은 경제적 여건으로 여겨지는 나 조차도 이 정도 교통비를 감당하기 버겁다.


나는 오늘도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출퇴근했다. 한정된 재정으로 무작정 차량 대수를 늘릴 수도 없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도로 사정을 고려할 때 원하는 시간에 탑승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 수년째 정기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같은 기사님을 여러 번 만나기도 한다. 40~50분 남짓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양한 기사님들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한다. 




기사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러 애로점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기사님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콜 신청 후 배차가 지연되어 대기 시간이 길어진 이용자가 콜 취소 없이 전화도 받지 않고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해 버리는 경우라고 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탑승장소까지 힘들게 갔는데 취소도 하지 않고 연락도 안 될 경우 기운이 빠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건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거네요.  

이런 일이 3번 반복되는 분은 하루나 이틀 등 

이용을 못하게 하는 페널티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건의도 했는데 장애인단체에서 반대해서 

수용이 안 됐다고 하네요."


"그럼 제가 건의해야겠는데요. 

소수의 몇 분 때문에 힘드신 분들이 

피해를 보시면 안 되잖아요."


오늘날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노쇼'가 장애인콜택시 이용자 중에서도 있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물론 부득이한 상황으로 이런 일이 1년에 한 번 정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복된다면 뭔가 제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상징적인 조항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 사회에서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상호 신뢰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건의해야겠다고 했더니 기사님께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전화도 잘 받으시고, 차량이 오기 전에 나와서 기다려 주시고, 부득이하게 탑승이 어려울 경우 취소도 잘해 주셔요."라며 급하게 수습하셨다.




나는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수고로 인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 공무원 분들과 기사님들, 콜센터 직원분들은 물론 이를 운영하기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서울시와 서울 시민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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