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나는 오래전 COPD라는 호흡기질환 판정을 받고 의료용 산소기를 통해 24시간 1.5L의 산소를 제공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집에서는 물론 외출할 때에도 2kg에 가까운 휴대용 의료용 산소기를 가지고 다니며 O2 캐뉼러 라고 하는 산소 공급용 콧줄을 코에 끼고 다닌다. 병원에 입원한 중환자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이 나에게 일상이 되고 보니 직장 생활은 물론 외부 활동도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낼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나 역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코에 O2 캐뉼러를 꽂고 당당하게 길을 활보하게 됐고, 회사에 출근해서 캐뉼러를 코에 꽂고 일을 한다. 다만 점심 식사 시간에 외부에 식사하러 가는 것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분비는 점심시간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면 동료들은 나를 배려해서 가까운 식당을 가야 하고 보폭과 걷는 시간도 나에게 맞춰줘야 했다. 아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기쁘게 배려해 줬지만 나는 미안했다. 나는 고민 끝에 사무실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메뉴가 문제였다. 지속 가능하고 모두가 편한 점심식사가 가능한 메뉴는 무엇이 있을까? 아내가 싸 주는 도시락?, 이른 새벽에 파는 김밥? 누군가가 수고를 해야 하는 일이며 지속 가능하지가 않고 사무실에서 음식 냄새가 날 수도 있어서 포기했다.
내가 찾은 대안은 '생식'이었다. 정수기 물만 있으면 생식을 넣고 흔들어서 후루룩 마시면 점심 식사가 끝난다. 필요한 영양소도 골고루 들어있고 건강에도 나쁘지 않다. 점심시간 확보가 돼서 쉴 수도 있고 인터넷 서핑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몇 년째 점심시간 알람이 울리면 오늘은 누구와 식사하러 갈까 고민하지 않고 정수기 물을 받아와서 생식을 먹는다. 최근에는 아내가 과일과 떡 등 주전부리도 챙겨줄 때가 많아서 더욱 풍성한 점심시간이 되고 있다.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시작한 혼밥 '생식'이 이제는 나의 루틴이 되었고, 따뜻한 기간에는 회사 옥상 정원에 올라가서 아이팟에 음악을 듣고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산책한다. 추운 겨울이면 인터넷 서핑을 통해 경제 뉴스를 스크랩하며 유익한 시간으로 점심시간을 보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이 많지만 어떤 것은 평생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고통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 아픔으로 인해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 변화를 '좌절'로 받아 드릴 것인지, '긍정'으로 받아 드릴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