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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Apr 29. 2023

아들이 기초 화장품 사 달란다.

일상

저녁 시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둘째 아들이다. 아들이 저녁에 나에게 톡을 보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필요가 있다는 거다.


오늘은 노골적이다. 그냥 사 달란다. 기초 화장품이 떨어졌으니 아빠가 사 달란다. 돈을 보내 주면 선크림도 같이 사야 하는데 그것은 용돈으로 사겠다며 협상을 했다.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화장품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꼰대 아빠가 되는 것 같아 참았다.


나는 이때까지 화장품이란 걸 제대로 구입해서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도 내 화장품은 아예 없다.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는 노푸족이다. 머리 감을 때도 물로만 씻는다. 화장품은 누군가 선물로 준 핸드크림을 가끔 바를 뿐이다.


유달리 냄새에 민감하고 피부관리, 옷에 관심 많은 멋쟁이 아들이 용기 내 부탁한 청을 거절할 수도 없고 돈을 보내 주쟈니 내 신용카드로 구입하면 천 원 이상 포인트 혜택이 있으니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아빠가 직접  사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려고 했던 선크림도 부탁한단다. 돈 보내 줬으면 선크림은 자기 용돈으로 사려고 했는데 아빠가 직접 사 준다니 선크림도 같이 사달라는 것이다. 2만 원 이상이라야 무료 배송이라고 아빠가 구입할 때 같이 사는 게 낫다는 논리다.  설득력 있는 요구다. 젊은 세대라 그런가 머리 회전이 빠르다.


조금 할인받으려다 7900원까지 더 쓰게 됐다. 아들의 귀여운 작전에 말린 기분이다.  그래도 쿨하게 신용카드로 구입하고 인증숏까지 캡처해서 보내 줬다.


아들은 "땡스~" 한 마디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사라졌다. 




나는 이런 아들이 밉지가 않다. 180cm가 훌쩍 넘고 덩치가 있어서 함께 다닐 때면 늘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아들에게 아직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아들이 언제든 부탁할 수 있는 아빠로 존재하는 것이 기쁠 뿐이다. 다만, 내가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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