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무수히 들어왔다.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란 불만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의 친구들이나 가까운 형들과 나를 아무리 비교해 봐도 내가 그들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3살 때부터 결핵성 관절염으로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양다리에 깁스를 하고 1년 넘게 지내야 했으며, 결핵성 척추염으로 병은 옮겨졌고, 10살이 겨우 넘어서야 내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국민학교 시절 3년이나 휴학했었다. 감사할 것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원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건강이 회복되었고 중, 고등학교를 무사히 다니게 되면서부터 나의 생각이 점점 바뀌어 갔다. 아니, 바꾸려고 노력했다. “나 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낮지 아니한가. 나보다 더 심한 장애인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보다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에겐 사랑하는 부모님과 좋은 친구들, 훌륭한 형님들이 계시지 아니한가.” 나는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감사와 위안을 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는 매우 '불안한 감사'였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에 따라서, 또 내가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소유 유무에 따라서 감사의 자세가 불평의 자세로 순식간에 바뀌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복음이란 것을 들고 캠퍼스의 동료들에게 나아가 전하기도 했다. 기쁨이 있었다. 감격이 있었다. 나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 진정한 감사의 기도가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것은 무엇과 비교해서 감사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예수님을 믿는 자녀로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감사였다. 바로 '온전한 감사'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나의 감사관을 가장 잘 표현한 성경 말씀을 읽고 내려가려 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하박국 3:17,18
1992.04.28. 화요일
** 이 글은 회사의 주임승진교육 중 3분 스피치 시간에 발표한 글이다.
우리 회사의 스피릿 중에 '감사정신'이 있다. 여기에서 감사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한다.
①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먼저 본다
②앞을 보기보다는 뒤를 먼저 본다.
③위보다는 아래를 먼저 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불안한 감사'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실천은 비교 대상을 나 보다 낮고 부족한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깨닫게 함으로 감사하게 한다. 내가 상대적으로 나을 때만 감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나의 시선이 조금만 달라져도 감사가 아닌 절망과 좌절로 바뀔 수 있다.
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분을 보고
'그래도 나는 이 정도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라며 감사하는 게 맞을까?
물론 자신이 최악이 아님을 깨닫고 자족하며 감사하라는 좋은 뜻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이런 노력 조차 하지 않고 불평불만 속에 갇혀 사는 삶보다는 훨씬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영향을 주는 상황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누구와 비교해서 더 나은 사람이니까 감사하고, 무엇과 비교해서 더 많이 가졌으니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절대적 가치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랑한다면 주변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감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자존감'과 '자기애'는 '감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감사의 뿌리는 '믿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