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청지기 May 30. 2023

장인어른

가족



주말에 고향을 다녀왔다.


홀로 계신 아버님의 생신을 맞아 처남 내외와 함께 아버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저녁에는 횟집에서 아버님 형제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생신 축하의 시간을 가졌고,

생일인 주일에는 아버님 댁에서 처남 부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아쉬음을 뒤로하고 처남 가족은 먼저 상경하기 위해 떠났고,

아내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비웠다.


집에는 장인어른과 단 둘만 남았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처가의 문화는 사뭇 달랐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 문화다. 제사도 없고, 술도 없다. 그런데 처가에는 명절과 기일에 제사가 있었다. 모든 식사 자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술을 드시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말씀도 많아지신다. 오죽했으면 장모님께서 대작할 수 있는 사위를 원하셨을까.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성장했고 위장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잔을 돌리며 받고, 권하는 전통적인 처가 분위기에서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성격 자체가 넉살 좋은 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이렇게 친척들 사이에서 겉도는 나를 살뜰히 챙겨 주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내가 술을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권할 때는 "우리 사위는 술 못한다." 라며 당황해하는 나를 도와주셨고, 방에 가서 쉬라고 자리를 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지금은 아버님이 나를 챙겨주신다. 신앙을 가지지 않으셨지만 식사 때마다 말씀하신다.


"김서방, 어서 기도하고 밥묵자."




나와 아내의 결혼 문제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을 때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 중이었다. 어린 딸은 어르고 달래고 협박을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장인어른께서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셨다.


"이 글을 읽어 본 이후부터는 편지 및 전화는 물론이고

 어떠한 방법으로 든 나의 딸과의 교제는

 일절 삼가 주기 바란다."


나는 편지 속에 담긴 아버님의 진심을 무엇보다 잘 이해했다.

하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불효의 순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내가 두 아들을 키우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저녁 남포동의 커피숍에서 처남 내외와 나눴던 이야기를 아버님께 해 드렸다.


"아들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직급도 높고 월급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열심히 하면 임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야 말을 안 해 주니 모르지.

잘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자네는 이제 언제가 정년이고?"


"네. 저는 내년 2월이면 정년입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데이.

이렇게 오래 잘 버텨 줄 줄 몰랐네.

참 대견하네.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게."


"아버님도 식사 잘 챙겨 드시고

항상 건강 조심 하십시오."




오고 가는 길이 힘들더라도 이렇게 만나면 좋다.

가족은 만나야 정이 들고 사랑이 깊어진다.

좋은 사위로 아버님 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이 할 수 없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