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관리
내 나이쯤 되고 직장생활 30년 정도 했다고 하면 퇴직금을 비롯해서 많은 돈을 모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실한 것 하나로 정년까지 왔으나 실은 개털이다. 그동안 뭐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헛돈 쓴 것도 없고 사기당한 것도 없는데 신기하다. 만년 과장이긴 해도 적지 않은 연봉인데 다 어디 갔을까?
빚도 없지만 아내에게 마음대로 돈을 쓰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 운전면허를 오래전에 딴 아내가 경차라도 사 달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주차장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사실은 돈이 없어서다.
"내년에 은퇴하면 어떻게 살려고?"
주위에서 걱정이 많다. 먹고사는 기본 적인 것은 퇴직금과 개인연금으로 해결하면 되고, 두 아들은 대학까지 책임졌으니 그 이후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일찍부터 말해 두었다. 그리고 퇴직금 떨어질 때쯤 되면 국민연금도 나오고, 이후에 그것으로 부족하면 주택연금 신청해서 받으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이쯤 되면 나와 아내 두 사람이야 노동하지 않고 먹고사는 것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게 하나의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15년째 하고 있는 전세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후에 두 사람이 살기에 적당히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 뒀다. 지금 거주지와 멀기도 하고 돈도 부족해서 일단 전세를 놨다. 이사를 가려면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꽤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주식 투자를 한다. 저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고 은퇴를 앞두고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엄청 머리를 굴리며 포트폴리오를 짰다.
나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중증 COPD환자다. 어느 날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고, 심장박동이 멈춰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포트폴리오의 원칙은 즉시 현금화 할 수 있는 곳에만 투자한다. 집은 내가 살 집이기도 하지만 아내가 사는 동안 거주해야 하기에 하나는 있어야 하니 샀고 그 외는 모두 금융 자산이다.
금융자산의 경우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비상금으로 적금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 나는 국내 주식 거래는 하지 않는다. 국내 주식의 경우는 개장 시간이 근무시간이기 때문에 투자금이 클 경우 어쩔 수 없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주식만 거래한다. 그래서 밤이 바쁘다. 이전에는 다양한 종목을 조금씩 매수하다가 이제는 70% 정도가 5개 종목으로 압축되어 있다. 상위 5개 종목은 꾸준히 하나씩 모아 가고 있다. 나머지 30% 정도의 다양한 종목은 배당용이거나 관찰용이다 상위 5개 종목을 제외하고는 하락율이 클 경우 비중을 줄이거나 전량 매도 한다. 나중에 급등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성격상 마이너스를 지켜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매도할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보유종목에서 사라지고 나면 손실 본 것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단, 상위 5개 종목은 예외다. 하락 폭이 커지면 더 산다. 글로벌 1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나는 목표가 단순하다. 투자하는 미국주식으로 부족한 전세금을 마련해서 이사 가는 것이다.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계속 전세를 살면서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작년은 무척 힘들었다. 크게 상승했던 미국 시장이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식 수가 많이 줄었다. 올 해는 현재까지 괜찮다. 모두가 ChatGPT라는 AI 덕분이다.
작년까지 수익률은 끔찍한 마이너스였다. 그래도 잘 버텼다. 버티는 내공은 꽤 수준급이다. 상위 5개 종목에 대해서 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히려 비중이 늘었다. 저가 매수 덕분이다.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선 지 꽤 된다. 이제는 계좌를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추가 매수할 달러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참 신기하다 다른 것은 다 쫄보인데 유독 미국 주식에 대해서는 용감하다.
애플폰을 보고 군침을 흘리면서도 가격에 놀라 손이 안 간다. 그래도 애플 주식은 샀다. 구글 입사의 꿈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나는 구글 주주다. 영상편집을 하려면 엔비디아 신형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엔비디아 주식은 샀다. 한 집에 두 대씩 차를 가지는 마이카 시대에 경차 하나 없지만 테슬라 주식은 있다. 아내에게 명품 가방은 못 사준다. 그래도 유럽 명품기업 지수 따라가는 ETF는 샀다.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기업을 사는 것이고 그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무모한 투기와는 구별되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험의 크기만큼 보상이 따라온다.
과연 나는 주식 투자로 내 집에 입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