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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04. 2023

받아도 될까요?

직장생활


오늘도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떤 직원이 내 책상에 뭔가 올려 뒀나 보다 생각하고 한쪽으로 치워 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와 다른 법인에서  근무하는 K과장이 메신저로 인사를 했다.


"ㅎㅎ 오늘 출근하세요?"

"출근했죠. 일찍 왔나 보네요."

"ㅎㅎ 과장님 OO언니가 꼭 선물드리고 싶다고 해서 자리에 올려 두고 왔어요."


'아, 나에게 주려고 아침에 두고 간 것이구나.'


OO언니란 분은 우리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한 분이다. 이 분이 K과장과 만났던 것 같다.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무리 생각을 곱씹어봐도 딱히 잘해 준 기억이 없는데 떠난 이후에 기억해 주고 챙겨주는 그분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왔기 때문이다.


"딱히 잘해 준 기억도 없는 데 감사하네요."

 꼭 감사+감동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런데 이런 거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요.

 준 것 없이 받기만 한 것 같아 부끄러운데 어쩌지..."


"제가 말씀 잘 전해 드릴게요. ㅎㅎ"


저녁에 퇴근해서 쇼핑백을 열어봤다. OOO 에그롤이다. 상자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흘려도 괜찮아"


아이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건강 간식이었다.  나는 처음 먹어 본다. 상자에 문구를 적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자 부스러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맛있었다. 함께 먹던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당신, 회사 생활 나쁘게 한 건 아닌 것 같네."




직장생활 33년, 은퇴를 1년 앞두고 뒤를 돌아보면 기억에 남은 것은 회사에 기여한 성과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웃고 울며 함께 했던 귀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직장 동료들과 쌓은 소중한 추억이 33년 동안 한결 같이 일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지금은  입사 동기뿐 아니라 4-5년 차 후배들 조차 대부분 이직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나고 갓 입사한 1~2년 차 어린 후배들이 주변에 참 많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지만 나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잘 준비하고 동료들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될 수 있도록 끝까지 열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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