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일기장
1977년 5월 5일 목요일 비 온 후 흐림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오늘은 제55회 어린이날이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집에 와서 안테나가 부러져 잘 나오지 않는 TV 앞에만 붙어 있다시피 했다.
오후 쓸쓸한 집안!
조용한 집안!
어린이날이 평일보다 더욱 쓸쓸하고 외로웠다.
모든 집안 형편을 잘 아는 나였지만 매우 적적했다.
오늘 나는 하루를 거저 멍청하게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
내가 잠시 동안 이나마 어린이날의 참뜻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에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일의 조국을 이끌어 갈 나!
언제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인가?
나는 이번 어린이날을 개기로 더욱 힘찬 대한의 역군이 되겠다.
나의 작은 힘이지만 조국의 영광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노력하리라.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학교 6학년 나의 일기장을 공개한다.
지금 읽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비실비실한 몸으로 꽤나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 어디 놀러 간 기억도 없고, 여행 간 기억도 없다. 병원을 학교처럼 다녔고, 출석한 날보다 아파서 결석한 날이 더 많았다. 중학교 때까지 가족들이 당번을 정해서 나의 등하교를 도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이런 다짐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돈이 없다고, 나이 들었다고, 장애인이라고 핑계하지 말자. 초등학교 6학년 키 작은 한 어린이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조국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을 하지 않았는가. 이때의 아이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 2막은 최소한 이 아이보다는 더 큰 꿈을 꾸며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보자.
"조국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