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인 오늘은 회사에서 공통연차란 이름으로 대부분의 직원이 쉰다. 주말에 늘 집에 있는 나도 이런 평일의 휴일은 그냥 보낼 수 없지 않은가.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내는 지인들이 많아 늘 '외출 중'이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데이트를 할 수가 없다.
어제였다.
주일날 아침 교회 가기 전에 물었다.
"당신 내일 특별한 약속 있어?"
"음.. 아직 약속은 없어.
그런데 다음날인 현충일에는 약속이 있어."
"그럼, 내일을 일단 비워놔."
"어디 가게?"
"응. 오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일단 내일 오전 아내의 시간을 확보했으니 시간 사용 계획만 세우면 되었다.
교회를 다녀온 후 폭풍 검색을 하며 귀한 반나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웠다.
1. 장소 : 올림픽 공원 장미광장 - 장미축제
2. 식사 : 올림픽 공원 장미광장 맞은편 이탈리아 식당
3. 디저트 : 올림픽 공원 장미광장 맞은편 유명 베이커리
장미광장을 중심으로 도보 3분 이내 거리에 있는 곳으로 조사 후 확정했다.
평소 같으면 쉬는 날 정오가 다 되어야 겨우 눈을 뜨는 내가 오늘은 8시 전에 눈을 떴다. 외출 계획이 있는 날은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산소포화도와 컨디션을 체크하니 나쁘지 않다. 오늘 외출은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빅스빅에게 날씨를 물어보니 화창하고 더울 거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날씨도 문제가 없었다.
오전 9시 20분에 장애인콜택시를 탔다. 출근 시간이 끝난 후라 배차가 빨리 됐다.
장미광장에 도착했다. 아내의 얼굴이 밝지 못하다. 햇볕이 강하게 쏟아지고 있어서 더웠고 장미축제라고는 하나 이미 끝물이라 장미들이 많이 시들어 있었다. 이쁜 장미와 함께 아내와 멋진 사진을 만들고 싶어서 이 멀리 왔는데 아내의 얼굴에서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 어쩌지.."
순간 당황했지만 이미 왔으니 어쩔 수가 없다. 사진이라도 남겨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보, 여기 이쁘다.
여기 서 봐요."
"아, 여기가 좋겠다.
여기 서 봐."
"셀카로 같이 찍자."
아내의 시큰둥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걸었다. 공원은 평지라 내가 걷고 산책하기에는 좋았다. 오랜 시간 외출을 해야 하므로 가지고 간 휴대용 산소기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서 꺼 두었다. 숨이 가쁠 경우 쓰기 위해서다. 산소 호스를 빼고 걸어도 크게 숨이 차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내와 단 둘이 나온 탓인 것 같다. 아내와 함께 걸으면 왜 숨이 덜 찰까?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장미광장을 모두 둘러보고 들꽃마루로 올라갔다. 양귀비의 붉은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매혹적으로 이뻤다. 장미광장에서 실망한 표정이었던 아내가 비로소 미소를 띠며 한마디 했다.
"여기는 괜찮네."
"휴~ 다행이다.
양귀비가 있어서."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새우날치날 스파게티, 아내에게는 셰프 특선메뉴인 한우 채끝 등심스테이크를 추천했다. 이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아내에게 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나눠서 배불리 먹었다. 아내가 매우 만족해했다.
식사 후 빵을 좋아하는 분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유명 베이커리로 이동했다.
아내는 그곳에서 먹을 빵과 커피, 그리고 집에 가지고 갈 빵을 함께 구입했다. 종류별로 담다 보니 두 봉지나 되었다. 베이커리점도 아내는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아내가 좋아하면 행복해진다.
나는 아들 바보가 아니라 아내 바보다.
아직도 서울 시내에 아내와 함께 산책할 곳이 많다.
'다음에'라고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주어질 때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