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20대 초반 성별: 여성 직업: 뷰티 유튜버
고민: 구독자가 늘지 않아 고민입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손님이 없다. 이런 날은 푹 쉬면 좋으련만, 편히 쉬어지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게 공부가 부족한 탓인가 싶어 애꿎은 책만 뒤적거린다. 하지만 집중이 될 리 없다. 얼마 전 애먹었던 사주 명식, 힘들어하는 내담자의 말, 명확히 이해 안 가는 이론들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쉬지 않고 상담하거나 고서만 읽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올까? 언젠가 오기야 오겠지만, 기약 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인터넷을 둘러보니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가 인기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머리도 식힐 겸, 조금만 보고 다시 공부할 요량으로 1화를 틀었다. 얼마 안 가 깨달음의 순간은 쥐뿔,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조금만 보기는커녕 너무 재밌어 연신 ‘다음 화’만 클릭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흑백 요리사’는 말 그대로 요리사를 흑수저 팀, 백수저 팀으로 나눠 경쟁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개성 넘치는 셰프들의 사연과 요리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거기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외식업계의 대부 백종원의 존재와,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안성재의 심사평이 보는 이를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안성재는 파인다이닝 셰프라 그런지 꼼꼼하게 모든 걸 다 체크한다.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었는지, 채소의 익힘은 적당한지, 간은 타이트한지 따지고 또 따지는 걸로 모자라 왜 이렇게 조리했는지까지 물어본다. 보는 내가 숨 막힐 정도다.
참가자들의 답변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데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단골손님의 메시지였다. 급한 일인가 싶어 바로 답장하니 상담을 원한단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내담자의 사연보다 심사 결과가 더 궁금하니 말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상담이 끝난 후에 봐도 되기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전에 저더러 유튜브 하면 잘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조회수가 너무 안 나와요. 저 진짜 잘되는 거 맞나요?”
상담 초보일 때는 이럴 때 당황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침착하게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묻는다.
“유튜브 시작한 지 얼마나 됐죠?”
“한 달 좀 안 됐어요.”
“구독자가 몇 명이죠?”
“15명이요.”
“조회수가 얼마 정도 나오세요?”
“1,200~1,300 정도 나와요.”
“그럼 많이 나오는 거 아닌가요?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고 알지도 못했던 사람 1,200명이 영상을 봤다는 얘긴데.”
“아… 그런가요?”
이런 내담자가 한둘은 아니지만 이해는 간다. 바쁘디바쁜 사회에 살다 보니 우리는 빠른 결과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자연 속 어떠한 생명체든 결실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겨울에 수박을 먹는다 해도,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이 자라 땅 밖을 뚫은 다음 줄기가 돼서 다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건너뛰진 못한다. 슈퍼 씨앗이 질 좋은 토양에서 자란다 한들 한겨울에는 싹을 틔울 수 없다. 여름철의 충분한 햇빛을 머금고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을이 됐을 때 비로소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주가 좋으니까 구독자가 적어도 조회수는 높은 것 같아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물론 시작하자마자 구독자가 수천 명 되는 채널도 있지만 드물죠. 헐벗고 춤추는 거 아니면.”
“푸핫! 그렇긴 하죠.”
“혹시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보셨어요?”
“네! 저 그거 엄청 좋아해요.”
“거기 안성재 셰프도 그러잖아요. 고기는 이븐(even)하게 고루 익고 간은 타이트해야 한다고. 선생님의 채널은 아직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선생님이 올린 영상들을 잠깐 봤는데, 섬네일이나 제목도 조금 짭짤하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간을 타이트하게 하는 것처럼요.”
“그러고 보니 너무 생각 없이 섬네일을 만들긴 했어요.”
후련해하는 내담자를 보니 기분이 좋다. 다시 자리에 앉아 ‘흑백 요리사’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영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내담자와의 대화 내용이 떠오른다. 이븐(even)하게 익어가길 기다리라는 말을 되뇌며 신발 끈을 묶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한참을 걷다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식히려 벤치에 앉았다. 어디선가 솔솔 불어온 바람에 흥건했던 땀이 마르자 격정적인 마음까지 사그라 드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숯불에 굽던 고기를 이븐(even) 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잔열이 퍼지길 기다리며 한소끔 식히는 레스팅(resting) 과정이 필수다. 그렇게 갈망하는 깨달음도, 나 자신을 천천히 익히고 기다릴 때 찾아오는 것일지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르며, 충분히 익어갈 나를 믿기로 했다.
사주 처방
꿈, 목표, 삶이라는 고기가 골고루 익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급한 마음은 괴로움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고기를 타게 합니다.
요리할 때 불 조절하듯 열정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레스팅(resting) 하듯 휴식을 잘 취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