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장 오사주 Oct 25. 2024

그리움을 흘려보내는 법

나이: 30대 초반 성별: 여성 직업: 회사원

고민: 잊을 수 있을까요?



명리학의 세계관에선 금은 수를 생한다. 어려운 말로 금생수. 이게 뭔고 하니, 금 기운이 수 기운을 왕성하게 만든다는 소리다. 엄청 심오한 개념 같지만 별거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비 내리고 눈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 보면 누구나 저절로 깨달을 수 있는 이치다. 당장 계곡물을 10분만 쳐다봐도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바위와 조약돌은 흐르는 물을 맑게 한다. 돌은 금이요, 물은 수다. 그래서 금생수다.


이 개념을 이용하면 신기가 없어도 귀신 보기쯤은 할 수 있다. 동전(금)을 통에 담아 비(수) 오는 날 공동묘지 근처에서 흔들어보는 거다. 귀신은 음 기운이니 얼핏얼핏 혼령의 잔상이 보일 수 있다. 무당이 방울(금)을 흔들며 귀신을 부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나더러 해봤느냐 물으신다면 박수무당이 아니라 시도해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겠다. 대신, 동전이 생기면 유리병에 모아뒀다가 아메리카노 마시러 스타벅스에 간다. 눈 내리는 오늘도 스타벅스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테이블 구석에 앉아 주머니 속 동전을 한 움큼 꺼내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보다 조금 더 많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상담하기로 했던 여자분과 전화 연결을 했다. 연애 관련 고민이었는데 언제 남자를 만나는지, 그 남자는 어떤 남자인지 굉장히 궁금해하셨다. 한참 얘기하다 보니 상담 종료 시간이 가까웠다.


"또 궁금하신 건 없으세요?"

"제가 언제쯤 전 남친을 잊을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궁금해했던 건 전 남친을 잊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사주에는 수 기운이 많았다. 수는 생각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담고 있는 에너지다. 물이 깊이 고이면 많은 것을 품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미련이나 집착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헤어진 사람에 대한 미련 속에 잠겨 있었다.


"전 남자 친구를 많이 사랑했나 봐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그래서 자꾸 생각나나 봐요. 딴 사람 만나도 자꾸 떠오르니까 새로운 사람한테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엔 슬픔과 혼란이 섞여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놓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녀처럼 깊은 수 기운을 가진 사람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선생님은 수 기운이 강한 분이에요. 그래서 미련과 그리움이 바닷속처럼 깊어져 갈 수 있어요."

"그럼 저는 평생 못 잊나요?"

다급한 그녀를 안심시키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물이 흐르듯 기억도 흘려보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내년 1월까지는 수 기운이 더 깊어질 테니, 아마 전 남친 생각이 더 자주 날 거예요. 하지만 2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그 기억이 희미해질 텐데요. 그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 남친에 대한 아쉬움도 사라질 거예요."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상담을 끝내고 남은 커피를 마시며 잔돈을 셌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이상하다? 열심히 세는데 자꾸 틀린다. 불현듯 전 여자 친구가 생각났다. 아, 맞다, 그녀도 이 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당시에도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 여자 친구가 마셨어야 할 공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그녀의 퇴근을 기다렸다. 차도 없으면서 버스로 데려다주겠다는 황당한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공짜 커피를 담을 텀블러와 버스 패스만 가지고 기다렸던 그때가 아른거렸다. 똑같은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가 지금은 5천 원이다. 물가도 오르고 시간도 지났건만 왜 그녀가 생각났을까? 아, 맞네. 수 기운은 미련, 그리움, 추억이라고 방금 떠들었지. 동전으로 금 생 아메리카노, 아니 금 생 전여친 해버렸다. 나도 내년 2월에는 잊을 수 있으려나?



사주 처방

흐르는 물을 손으로 막을 순 없습니다.

움켜쥐려 할수록 마음만 괴롭습니다.

지나간 연애의 추억도 소중하다고 붙잡을 순 없습니다.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로 가듯 미련과 그리움도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전 06화 뜨끈뜨끈한 팥빙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