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30대 후반 성별: 남성 직업: 연구소 소장
고민: 뜨끈뜨끈한 팥빙수가 먹고 싶습니다.
계해월은 이른 겨울인데도 유난히 춥다. 하늘에는 계수, 땅에는 해수, 사방이 물 기운으로 가득하니, 몸속까지 시린 기운이 스며드는 듯하다. 추운 날씨에 가장 힘든 순간은 버스를 기다릴 때다. 정류장에서 서서 입김을 내쉬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진다.
추운 계절엔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것을 찾는다. 그것이 뜨거운 어묵 국물일 수도 있고,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길거리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를 다시 읽는다.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던 중, 작년 여름 요가를 끝내고 카페에서 먹은 팥빙수 사진이 눈에 띈다. 나에게는 팥빙수가 어묵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때, 카톡이 울렸다. "아들 어디야?"
엄마는 겨울 생이다. 사람은 태어난 계절에 따라 삶의 온도가 다르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활기차고 따뜻한 반면, 엄마는 겨울에 태어나 조용하고 침착하지만 늘 따뜻함을 갈구한다. 이맘때가 되면 엄마는 나보다 더 마음이 시릴 것이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타이핑을 하기 어려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버스 기다리는 중인디. 무슨 일이셔?"
"으응, 갑자기 200만 원 정도 필요해서."
"왜?"
"빌려 줄 거야?"
"어디에 쓸 건데?"
"넌 빌려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물어봐?"
엄마에게 따뜻한 건 내가 아니라 200만 원이라는 생각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돈이면 나도 따뜻해질 수 있는데….
"나도 요즘 좀 어려워."
"아우, 됐어. 너는 만날 있으면서 없다고 하잖아."
"오홍, 어떻게 알았어? 아주 잘 아네!"
"내가 널 낳았잖아, 이놈아!"
엄마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괜스레 미안해져 딴 얘기를 꺼냈다.
"그러게, 엄마가 8월에 나를 낳아준 게 참 신기하고 고마워. 사주 볼 때마다 생각나."
"얘, 그때 얼마나 더웠는지 알기나 아니니?"
100번도 더 들은 얘기지만, 엄마는 그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라는 듯 열정적으로 101번째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7년 8월은 무척 더웠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엄마는 매일 밤 베란다에 엎드려 자곤 했다. 그러다 새벽에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갔고 낮 12시 넘어서야 나올 거라던 내가, 엄마의 엄청난 노력으로 아침 10시 30분에 태어났다. 다시 또 듣고 보니 12월 한겨울에 태어난 엄마가 8월 한여름에 나를 낳은 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기운 속에서 태어난 엄마는 늘 따뜻한 걸 원했고, 나를 통해서도 따뜻함을 찾으려 했던 거다.
"200만 원 빌려줄 테니 나랑 팥빙수 먹으러 가자."
"한겨울에 무슨 팥빙수니?"
"팥빙수 먹으면 뜨끈뜨끈해져용."
"뜨끈뜨끈하다고? 추워 죽겠구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나 안 시리면 다행이지."
"엄마랑 먹으니까 그렇지!"
다 큰 아들의 애교에 엄마가 깔깔 웃었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엄마와 함께 200만 원짜리 팥빙수를 먹으면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차, 사진도 찍어야지. 추울 때 꺼내보려고? 아니! 증거용 사진이다. 내 돈 떼먹기만 해봐!
사주 처방
겨울이 있기에 여름이 있고 어머니가 있기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계산기를 내려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 마음속의 겨울이 계속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