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대 후반 성별: 여성 직업: 요식업
고민: 섞자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상담 신청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알맞은 인생 데이터 연구소>의 영상에는 가끔 이런 댓글이 달린다. 대부분 50~60대 어머님들이 적어주신 댓글이다. 프로필에 오픈 채팅 링크를 달아둬도 그게 뭔지 잘 모르셔서 그렇다. 이럴 때는 다시 링크를 복사해서 붙여 넣으며 “이 글자를 손으로 터치하면 상담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댓글을 단다.
“안녕하세요. 오사주님 유튜브 엄청 재미있게 보는데 상담 신청하고 싶어서요.”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뒤이어 온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을 보니 우리 어머니와 동갑인 60대 후반 여자분이었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뭐가 궁금하실까?
“혹시 특별히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상담 전까지 편하게 메시지 남겨주세요. 꼼꼼히 살펴보며 상담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게 연애 때문인데…. 제가 핸드폰 치기가 어려워서 상담 때 말씀드려도 될까요?”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60대 어머님들 중에 뜨겁게 연애하는 분이 많다. 남녀노소가 보는 유튜브의 인기 콘텐츠 주제는 항상 연애이듯 사주 상담의 주된 고민도 애정 문제다. 나는 연애 유튜버들이 말하는 “그 남자는 그만 잊으세요.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겁니다”와 같은 식상한 답변은 안 한다. 간명가들이 자주 하는 “너는 이혼수가 있어”처럼 고지식한 소리도 안 한다. 대신 사주와 현재 연령대에 맞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령, 멀끔했던 전 남친을 잊지 못하는 20대 여자에게는 “멀끔해 보이는 건 그 애의 엄마가 먹여주고 입혀줘서 그런 겁니다. 남자 사주를 보니 엄마 같은 여자를 찾는데 감당 가능하세요?”라고 묻는다. 잘생겼지만 능력 없는 남자에 대해 고민하는 30~40대 여자에게는 “예전 어른들은 남자 얼굴 소용없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귀찮아서 대충 얘기한 거예요. 잘생긴 남자는 대부분 바람둥이입니다. 성병 걸린 사람도 많이 봤고요. 이 남자는 먹여주고 재워줘도 바람피울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하고 경고한다.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50~60대 여자분에게는 “점잖고 건강하면서도 말끔한 남자는 없다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 남자는 젊어서 결혼운 들어왔을 때 이미 결혼했죠. 선생님 나이대 남자는 둘 중 하나예요. 안 좋은 운 때 버림받은 빈털터리거나, 좋은 운 믿고 나대는 남의 집 남자”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상담받으러 오신 분의 케이스는 후자였지만 조금 복잡한 상황이었다. 어머님은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다. 규모를 확장할지 말지 고민 중인데 만나는 남자분이 자기 지분을 투자하고 도와주기도 할 테니 확장해 보라고 나섰단다. 문제는 이분이 가정이 있는 남자라는 거다. 본인 말로는 자식들도 다 컸고 부인과 데면데면한 상태라지만 어머님은 찜찜하기만 하다. 이럴 때가 되면 고민이다. 돌려 말하면 답답해하시고, 딱 잘라 말했을 때 본인이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면 기분 나빠하신다. 뭐라고 설명드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 없어 화제를 바꿨다.
“어머님, 목 기운이 많으신데 무슨 식당 하세요? 한정식? 혹시 나물 종류?”
“와, 진짜 용하네요. 저 산채비빔밥 전문점 해요!”
뒷걸음치다 얻어걸렸지만 이거다 싶었다.
“저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산채비빔밥인데 모시고 가야겠네요. 어머님이 저희 어머니랑 동갑이시거든요. 그래서 더 반갑고, 잘 해드리고 싶고, 그래서…. 그냥 저희 어머니랑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말씀드릴게요. 어머님은 앞으로 최소 3~4년 동안 재물운이 정말 좋으세요. 돈을 더 벌고 싶으면 확장하셔야죠. 그런데 아마 혼자 이걸 하기가 좀 벅차셔서 고민인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쵸. 사주를 보면 어머님이 마음이 여리신데 업자들 상대하고, 가격 흥정하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니까 뭔가 남자가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으신 거잖아요?”
“네, 맞아요!”
“제가 요리는 잘 모르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따로 먹어야 하는 나물이 있고 비볐을 때 더 맛있는 나물이 있는 것 같아요. 남녀 사이는 이런 나물이랑 비슷해요. 함께 비비고 어쩌고저쩌고하면 좋죠, 시너지도 나고. 그런데 명의만큼은 굳이 섞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명의는 각자 있을 때가 더 좋아요. 섞지 않고 먹었을 때 맛있는 나물처럼요.”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어요.”
어머님은 고맙다며 식당에 꼭 놀러 오라고 하셨다. “네, 꼭 그럴게요!”라고 약속하며 다짐했다. 향긋한 산나물 같은 어머님을 뒤에서 받쳐줄 양념간장 같은 남자를 찾겠노라고. 그리하여 내가 아닌 그와 고민을 나누게 해드리겠노라고. 저와 같이 산채비빔밥 먹으러 갈 점잖은 어르신 계시면 연락 주세요.
사주 처방
명의만은 섞어 비비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