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엄마에게

2024.05.10

by 배고픈 애벌레

출근길에 스치는 풍경이 날로 달라져 간다. 연둣빛 신록이 수줍은 아이처럼 얼굴을 내밀더니 비가 온 뒤 그 빛이 짙어져 하늘을 가린다.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가로수를 스쳐 지나가며 계절의 여왕인 5월의 중심에 머문다. '벚꽃 엔딩'을 틀어 놓고 따뜻한 봄볕에 나가 앉아 본다. 경직된 인간은 유연해지고, 마음은 물처럼 흐른다. 물길을 따라가니 늙은 아빠와 엄마가 외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없는 딸은 늘 부모님이 그립고,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떨군다. 그래서 이 찬란한 계절 속에 있어도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벚꽃 잎이 애잔하게 날린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게재 되었던 글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란 제목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젊고 순진한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익명의 사람들처럼 자신을 낳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의 내용처럼 아빠랑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 엄마에게 내가 없었다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웠을까? 자유롭고 행복했을까? 꼭 필요한 말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가 없다.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등학생 딸아이에게 물었다. "지효는 20대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딸아이는 대답했다. "엄마, 아빠랑 꼭 결혼해." 그 말을 듣고, 나는 감사했다. 녹록지 않은 이민자의 삶을 살지만 우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가꾸어 가는 가정이 작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운이 억세게 좋은 편에 속한다.


조지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해 논하며 삶은 비참하고, 고되며, 짧다고 했다. 살면서 그 말이 맞다고 느끼는 순간이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건장한 근육도 힘을 잃어버리는 날이 반드시 온다. 큰 자랑거리가 되고, 행복의 원천이라 믿었던 대상도 안갯속으로 사라져 가물거리는 순간에 이른다. 그러기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 답이다.


젊은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세요. 아이를 낳으세요.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있는 힘껏 사랑하세요. 당신이 사랑한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을 아끼며,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거예요. 그대가 이 세상에 없어도 사랑은 영원이 남아서 아름답게 빛날 거예요. 삶이 비참하고, 고되며, 짧다고 해도 훗날 당신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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