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

시들수록 진한 향기를 내는 꽃처럼

by 배고픈 애벌레

생일날 받은 꽃을 화병에 꽂아 식탁 위에 두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이 제각각 다른 색을 띠고 있지만 하나로 어우러져 예쁘게 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생일날의 외로움을 꽃을 보며 달랬다. 꽃봉오리가 막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백합은 탐스럽고, 꽃송이가 작은 자줏빛 국화는 앙증맞았다. 며칠이 지나고 꽃은 시들기 시작했다. 물을 보충해 주었지만, 꽃과 풀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말라가는 것이 애처로웠다. 빛을 잃어가는 꽃은 시들수록 더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식탁에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꽃들은 전성기 시절의 풋풋함과 싱그럽던 향기를 뒤로하고 안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로부터 생일 축하 꽃다발을 받기 전날, 골수암을 앓고 있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밝고 건강하던 서른여섯 살의 여자, 출산 휴가를 떠난다며 설렘 가득했던, 아들을 낳고 한껏 꿈에 부풀었던 그녀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함께 일하던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일상은 멈추지 않고 무겁게 가라앉은 채 굴러가고 있었다. 그 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생일날,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얼떨떨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하고 동료들로부터 받은 꽃다발과 축하 카드에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유치원생 꼬마들부터 고학년 아이들까지 밝은 미소로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날이 언제부터인가 더는 반갑지 않았다. 바쁜 일상에 불필요한 이벤트를 더해 삶의 무게만 더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료를 생각하니 살아서 생일을 맞이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게 주어졌던 모든 날이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어졌던 선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일은 축하받고, 기뻐하기에 마땅한 날이었다. 딸아이가 건네는 생일 카드를 펼쳐보았다. ‘엄마 태어나 줘서 고마워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소소한 일상이 내가 오늘을 살며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앞서간 동료의 두 살 난 아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가 엄마 없이 살아갈 세상이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먼 길 떠나는 그녀는 곱게 화장을 하고 평온하게 누워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피어날 꽃봉오리 같던 그녀가 못다 핀 채 저버렸다는 생각에 슬픔보다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사랑으로 채워 더 의미 있게 써야만 한다.


젊은 날 생을 마감한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시든 꽃을 정리했다. 그 가수의 바람처럼 긴 여행의 끝에서는 평안할 수 있을까?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게 될까? 그것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생각한다. 내가 당연하다 여기며 맞이한 오늘이 세상을 떠난 동료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것을. 나의 오늘은 어제와는 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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