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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4. 2022

"살라모 알라이쿰 (안녕하세요)"

모로코 여행기 #1

2022년 3월 27일 오후 3시

카사블랑카 모하메드 공항에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 또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낯선 사람들 사이 웃고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Hi(안녕)!!"

6년 지기 모로코 친구 Abubaker (프랑스식으로는 좀 더 쉽게 Boubker라고 부른다. 이하 붑커.)가 반갑게 날 부른다. 붑커는 4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함 하나 없이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무거운 배낭을 차에 싣고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길. 슬슬 어스름이 지고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물든다.

창문을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3~4월 모로코의 청량한 날씨가 바람에 실려오니 이제 좀 실감이 난다. 모로코에 왔구나. 내가 우리나라 다음으로(난 애국자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


왜 모로코가 좋냐? 고 물으면 우선 4년 전 처음으로 모로코를 갔던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또 4년 전의 모로코 여행을 얘기하자면, 그보다 2년 전인 20대 초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럼 무려 6년 전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모로코의 해변도시 중 하나인 '엘 자디다'의 바다와 노을


나는 여행이 좋다.


스무 살 무렵에는 주변에서 어디 좀 가라고 가라고 해도 집이 좋았다.


그랬던 내가 이십 대 초반 겨울방학, 일상을 탈출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뭔가에 홀린 듯이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약 한 달간 홀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숙소는 카우치 서핑 (무료로 현지 호스트의 집에서 숙박할 수 있는 커뮤니티. 코로나19 이후로는 연회비를 내면 홈페이지를 사용할 수 있다.)을 통해 구했다.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현지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투어리스트들을 위한 명소와 음식점보다는 로컬 사람들이 즐기는 장소와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때 느꼈다. 여행의 재미는 좋은 경치를 보는 것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새로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모로코에서는 손님이 오면 언제든 웰컴 티와 다과를 대접하는 것이 관습이다.


서로의 문화와 마음을 공유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면, 여행 중독은 바로 그때부터이다.

6년 전 첫 나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순간부터 나의 여행 중독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카우치서핑 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가 바로 지금 나를 모로코에서 반겨준 붑커이다.  


그는 여행가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카우치서핑에서 나눴던 짧은 대화를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다.  

아참. 오로지 여행을 위해 생존용으로 익힌 짧은 영어라, 문법 및 해석에 오류가 많더라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붑커>> Hi, how are you? can we become friends? because i will travel around the world and i need a lot of friends in the world. (안녕? 우리 친구 할래? 나 세계 여행하려고 해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어.)

나>> Sure! (그래!) ---->상당히 쿨하게 대답했더라.. 내가 저랬었구나.

붑커>>Thank you so much. Do you have facebook? (고마워. 페이스북 해?)

나>> (나의 페북 주소를 보내고선) This is my facebook address!(내 페북주소야!)---->역시 상당히 쿨하다..

붑커>>Oh thank you so much. My facebook is ~~~(와 정말 고마워. 내 페북아이디는~~~야.)


이렇게 우리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대화가 잘 통해 베스트 프렌드가 되기까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일단 둘 다 여행을 좋아했으니 어느 나라가 좋냐부터 시작해 그동안 여행하면서 찍어두었던 사진과 동영상만 공유해도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신나게 얘기를 하던 어느 날 나는 모로코에 초대를 받았다.

아래의 대화는 기억에 의존하여 한국어로 복원하였다.


붑커>> 헤이 베스트 프렌드! 너 모로코 올래? 나 너 정말 초대하고 싶어.

나>> 오 땡큐! 완전 좋지!

붑커>> 그럼 지금 와.

나>>????!!!!


그때 나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다. 붑커가 말하길 이탈리아에서 모로코는 매우 가까우니 며칠만 왔다 가라는 것이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북단에 있어 스페인과 아주 좁은 바다 하나만 사이에 둔 나라로, 유럽 대륙과 굉장히 가깝다.

나를 엄청난 고민에 빠트릴만한 매력적인 제안이었으나 나는 눈물을 머금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 미안, 나 정말 가고 싶은데 며칠 뒤에 개강이라 한국 돌아가야 해..

붑커>> 정말 며칠만 오면 안 돼? 돌아가는 비행기 바꿔서 모로코에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 돼?

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진짜 개강이 코앞이야.


그랬다. 귀국 후 3일 뒤에 개강인 살짝 미친 스케줄을 짰던 것이다.

때문에 모로코행은 포기해야 했으나 우리에겐 다음이 있었다.


붑커>> 그럼 언제 올 수 있어? 오면 진짜 재밌을 거야. 우리 가족들도 만나게 해주고 가이드도 전부 해줄게.

나>> (오예!!) 그럼 나 졸업하고 간다!

붑커>> 오케이. 그때 보자!


나는 정확히 1년 뒤 졸업을 했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붑커를 만났다.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붑커는 모로코의 가장 큰 도시인 카사블랑카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는 붑커를 만나기 전에 모로코의 다른 마을들을 며칠간 여행한 뒤 카사블랑카로 넘어온 상태였는데, 한적했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카사블랑카는 인구가 많았다. 하산 2세 모스크에서 보자고는 했는데.. 대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붑커인가. 그때 전화가 왔다.


붑커>> 여보세요? 너 어디야?

나>> 나 모스크 앞에 서있어!

붑커>> 나도 모스크 앞인데 너 안 보이는 것 같아. 혹시 바다 보여? ----> 하산 2세 모스크의 광장은 겁나게 커서 사람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바로 옆에 바다가 있어 아름답기도 하기 때문에 잠깐 바다에 한눈을 팔면 친구를 못 만날 수 있다.  

나>> 응 왼쪽으로 바다 보여!

붑커>> 잠깐. 나 너 찾은 거 같아.


맨날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서만 보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기쁜데 이상하게 긴장되고, 어색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어색한.  
아무튼 신기하구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를 실제로 만나다니.    

그렇게 몇 분을 벙쪄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잘 생각이 안 난다.

붑커는 사교성이 굉장히 좋았다. 고향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족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느새 긴장은 풀리고 마음은 기대로 가득 찼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아주 nice하고 wonderful했다. 예전에도 두 명의 외국인 친구가 집에 머물다 간 적이 있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갔다고 했다. 고향집이 있는 엘 자디다에 가까워지자 나는 설레면서도 약간 긴장이 되었다.


드디어 집에 도착. 문이 열리고 가족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살라모 알라이쿰(안녕)!"

인자하신 어머니와 착한 누나, 그리고 귀여운 동생들과 조카들까지.

붑커 가족의 집에서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머물렀지만, 3일은 그들과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요리도 하고 춤도 추고 온 동네를 놀러 다니며 한 가족처럼 편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즐거웠던 홈스테이가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붑커 어머니는 친엄마처럼 나를 꽉 안아주셨다. 난 생각했다. 꼭 다시 만나러 와야겠다고.

나는 모로코의 유명 관광도시 중 하나인 마라케시로 이동해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었고 붑커는 직장에서 3일간의 휴가만 허락된 터라 나와 함께 갈 수 없었다.

마라케시로 가는 택시에 오르기 전 붑커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번 더 같이 갈 건지 물어봤다.

나>>마라케시로 같이 갈래?

붑커>>내일 일만 없으면 당연히 가고 싶지.

나>>그러게.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봐!

붑커>>나도 정말 즐거웠어. 잘 가서 꼭 연락해!   


사실 3일간의 휴가를 만들기 위해 붑커는 꽤나 고생했다.

아래는 우리가 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크에서 처음 만나기 직전 나눈 대화이다.

  

요약하자면, "나 아픈척하고 3일 동안 쉬기로 했다! 지금 몰아서 3일 치 일하는 중."

솔직히 맨 처음 든 생각은 '우리나라와 참 다르구나. 저런 꾀병이 직장에서 통하다니'였다.

하지만 어쨌든 나를 위해 보스에게 감히 꾀병을 부리고 3일 치 업무까지 벼락치기를 해주다니. 고마운 녀석.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에 택시에 타서도 한동안 차 뒷자리 창문으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 또 만날 수 있길.


그로부터 4년 뒤.


나는 다시 엘 자디다의 붑커네 고향집에 가고 있다. 4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버스가 아니라 붑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중이라 훨씬 편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 둘 다 4년만큼 늙었다는 점? 허허.
2시간 정도를 달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엘 자디다의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붑커>>이 바다 기억해?

나>>당연하지! 시디 부지드! (Sidi bouzid. 엘 자디다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붑커>>맞아! 아직 기억하고 있구나.

나>>어떻게 잊겠어 하하.

4년 전 시디 부지드에서의 추억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쓸 생각이다.

하얗고 파랗게 칠해진 아름다운 엘 자디다의 가로등을 따라 몇 분을 더 달리자 익숙한 골목이 나왔다. 4년 만에 왔는데도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집들이 왠지 포근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3층에 사는 붑커네 집까지 원형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살라모 알라이쿰(안녕)!"

4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 따뜻한 환영.  


그리웠던 가족들의 얼굴을 다시 보니 그저 꿈을 꾸는 것만 같아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랜만이에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는데.

그 많은 말들을 뒤로하고서 나는 두 팔을 크게 벌려 가족들에게 안기며 인사했다.   

"알라이쿰오 살람(안녕하세요)"



"살라모 알라이쿰"
'당신에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뜻으로, 인사를 할 때 쓰인다.
답할 때는 "알라이쿰오 살람"이라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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