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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6. 2022

탄지아 - 마라케시로 먹으러 오세요

모로코 여행기 #3

나>>오늘 만나는 친구 이름이 뭐라 그랬지?

붑커>>Hamid (하미드).

나>>아 맞다. 하미드, 하미드.

붑커>>오늘 우리 같이 탄지아 먹을거야. 하미드가 가져오기로 했어.  

나>>탄지아?! 대애애애애박.


탄지아.

소고기를 푹 고아서 여러 야채와 함께 졸여 먹는 마라케시의 대표 음식. 우리나라의 갈비찜과 맛이 비슷하다. 아 갑자기 배고프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오늘은 마라케시 여행의 첫날. 우리는 붑커의 베스트 프렌드 중 한명인 마라케시 사람 하미드를 만나기로 했다. 붑커가 너무 너무 좋은 친구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던 친구이기에 (절대 이 친구가 탄지아를 가져다주기로 해서가 아니라)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나>>근데 하미드랑은 어려서부터 친구였어?

붑커>>아니. 하미드는 몇 년 전에 등산하다가 만난 친구야.

나>>아, 혹시 Mountain Toubkal? (툽칼산. 모로코에서 첫 번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산.)

붑커>> 맞아! 그때 툽칼산에서 다리를 다쳐 산길에 넘어져있는 하미드를 발견했는데, 내가 걔를 업고 내려왔거든. 그 뒤로 친해졌어.

나>>와우.. 너 진짜 대단하다. 하미드가 널 좋아할 만 하네!


뭐야뭐야,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긴 우정이라니. 갑자기 붑커가 꽤나 멋있어보였다.

하긴. 붑커가 좀, 의리 빼면 시체인 친구이긴 하지.


잠시 이야기의 샛길로 새자면,

4년 전 모로코에서 붑커를 만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동안 붑커에게 연락을 끊은 적이 있었다. 아니 대체 왜?!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학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녹초가 되었을 무렵이라서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만의 은둔생활을 ... 어쩌구 저쩌구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렇다. 아무튼 내가 정말 나빴다. 나도 안다. 그 때를 떠올리며 붑커에게 난 큰 빚을 졌다고 항상 말한다.


 

악필 붑커.. 그렇지만 편지 내용은 정말 감동이야.  "너 네가 그리워."라니.. 또박또박 썼을 널 생각하니 더욱 미안해지면서도, '나'를 '너'라고 잘못쓴게 귀여워서 웃어버렸다.


 

그렇게 연락을 하지 않은지 몇 달이 흘렀을까. 붑커로부터 편지가 왔다.

요약 해석하면,

>>네가 갑자기 연락이 없어서 너무 걱정돼. 나 맨날 네 소식 기다리면서 폰 확인하고 있어. 아무 답장이 없으니까 점점 더 걱정된다. 우리가 모로코에서 3일 동안 보냈던 시간들을 난 아직도 기억해. 넌 내가 다 잊었을거라 생각하는거야? 제발 네가 잘 살고 있는지, 건강한지 소식 좀 전해줘 친구야. 정말 걱정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너 네가 그리워."  


한글도 모르는 애가 구글에서 찾아서 꾹꾹 눌러 따라썼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했다..

붑커에게 연락두절로 걱정을 끼쳤던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잘못했다고 여기는 일 몇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붑커는,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더라도 화내기보다 걱정하고 먼저 다가와주는 의리파 친구이다.  

다시 한 번, 미안해 붑커.


자, 이제 다시 마라케시로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대표적 관광도시로, '제마 엘프나'라는 유명한 광장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끌벅적한 광장에 가면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서 수다떠는 사람들, 갖가지 물건을 내놓고 호객을 하는 상인들, 그리고 맛있는 생과일주스와 샌드위치.. 아, 자꾸 먹을 것만 생각난다.

관광도시답게 도로가 차와 오토바이로 바글바글하고 길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다닌다.


많은 인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다가 나를 보면서 한마디 한다.

"조이나!"

응? 뭐라는겨?

나>> 붑커. 방금 쟤네 뭐라고 한거야?

붑커>>조이나. 너 예쁘대.

뭣이?!! 그런 뜻이었어?

괜스레 으쓱해진다. 흐흐.

조이나. darija로 예쁘다는 뜻. 이런 단어는 또 잘 외워진다.

아차, darija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Darija (데리자). 모로코에서 일상생활에 쓰이는 언어이다. 아랍어 사투리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많은 부분이 달라서 거의 다른 언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여기서 또 잠시 TMI를 쓰자면, 모로코에서는 회화용으로 데리자, 교육용으로 표준 아랍어, 업무용으로는 보통 프랑스어를 쓴다고 한다. 모로코는 과거 프랑스에 점령된 적이 있어 프랑스어가 아랍어만큼이나 자주 쓰인다.  


모로코에서 배운 데리자 단어가 제법 많은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수첩에 적어두고 종종 읽어본다.


언어는 여행을 회상하게 만든다.

 



저녁이 되었고, 이제 하미드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우리는 하미드 집 근처 길가에 차를 대고 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미드가 인사를 하며 나타났다.

"살라ㅏㅏㅏㅏㅏ모 아아알라이쿠우움 (안녕)!"

마라케시 사람들은 사투리로 말을 길게 늘여서 한다고 붑커가 알려줬었는데 정말이군.  

하미드는 붑커만큼이나 유쾌하고 착하디 착한 친구였다. 프랑스어를 굉장히 잘하는데 나는 프랑스어는 안녕 정도밖에 모르고 하미드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아, 중간에서 붑커가 열심히 통역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하미드는 마라케시에서 유명하다는 탄지아 맛집에서 탄지아를 사서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나>>냄새 진짜 좋다! 오늘 탄지아 먹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중에 한국 놀러오면 가이드 해줄게!

하미드>>정말? 고마워! 꼭 갈게.  


우리는 숙소의 옥상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탄지아를 먹기로 했다.

바람 좋고, 별빛도 좋고, 숙소 뒤편으로 쭉 펼쳐진 올리브 나무 농장도 달빛에 빛나며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내주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탄지아까지.


탄지아 개봉박두!


탄지아는 특별히 맛있게 만드는 맛집이 있는데

그 맛의 차이는 요리를 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생기지만, 음식이 담긴 옹기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에 따라서도 생긴다고 한다. 옹기가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기름을 잘 머금게 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게 되는 원리라는데, 우리나라의 장독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해 온 빵과 아떼를 곁들여 먹는 탄지아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하미드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부드러운 야채와 소고기를 '홉스'라는 모로코의 빵에 올린 다음 진한 국물에 찍어 입에 한가득 넣으면... 와우. 맥주가 생각난다.    


모로코는 무슬림의 비율이 높은 나라지만 이슬람 국가 중에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라 관광객은 맘대로 술을 마셔도 된다. 하지만 붑커와 하미드는 무슬림이기 때문에, 난 맥주 생각은 훌훌 털고 탄지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친구들을 존중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흑흑.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날 하미드로부터 처음 배우게 된 데리자가 있었으니..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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