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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4. 2022

쿠시쿠샤 - 모로코에서 차를 따를 땐 쿠시쿠샤를 기억해

 모로코 여행기 #2

모로코에서는 가족, 친구, 손님, 그 누구든지 집에 오면 차를 대접받는다.

차를 따를 때에 절대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붑커>> 쿠시쿠샤! 쿠시쿠샤!!

나>>오케이 오케이!!


바로 쿠시쿠샤.

차에 보글보글 거품이 생기도록 일부러 주전자를 높게 들어올려 차를 따르는 모로코의 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그 의미가 뭐라고 붑커가 알려줬었는데.. 정확히 뭐였더라.. 차가 잘 섞이도록 하여 차의 맛을 더 좋게 하고.. 뭐 이런 의미였던 것 같은데. 다음에 다시 물어봐야겠다.   

모로코에서는 주전자를 더 높-이 찻물의 줄기를 더 길-게 늘일수록 차를 잘 따르는 고단수라고 할 수 있다.

대충 레스토랑에서 유리잔에 물 따르는 것을 떠올리며 하면 되겠지!

하며 무턱대고 도전했다가는 조준을 잘못하여 식탁보를 잔뜩 적실 수 있으니 주의하자.


이게 또 쉽지가 않다.


쿠시쿠샤는 은근히 재미있단 말이지.

붑커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 대부분의 쿠시쿠샤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붑커네 가족에게도 인정받은 나름 쿠시쿠샤 장인이다. 처음에는 실력이 영 시원찮았는데, 내가 차를 따를 때마다 붑커가 "쿠시쿠샤!! 쿠시쿠샤!! 더 높이 들어야지!!"를 외치며 하도 구박을 해대는 탓에 자연스레 몸에 익었다. 정말 고맙구나 친구여.


그러나 나름 장인 소리를 듣던 나도 얼마 전까지 간과하고 있던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었으니.


붑커>>엇! 이거 No sugar? 설탕 안 넣었어?

나>>아니?! 3개나 넣었는데?

붑커>>근데 왜 안 달지..?

나>>응?


붑커가 마시던 차를 한 입 마셔보니.. 아니 이게 뭐야. 정말 하나도 안 달잖아?!


알고보니 쿠시쿠샤를 하기 전 설탕을 잘 섞기 위해 3번 정도 컵과 주전자에 차를 번갈아 따라가며 섞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럴수가.. 장인으로서 수치스럽구나.


그날 이후 나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로코 다도의 장인이 되었다.

절대, never, 한 알갱이의 설탕도 놓치지 않고 남김없이 섞어줄테야.



이런 식으로 설탕을 넣은 뒤, 잔에 여러 번 차를 따르고 비워내는 과정을 거치며 잘 섞어줘야 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나가는 다도의 장인일지라도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다.


때는 마라케시의 붑커네 이모님 댁을 방문한 날이었다.

푸근한 인상의 이모님은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주셨고 곧 차와 과자를 내오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 또 나의 쿠시쿠샤 실력을 뽐낼 시간인가.'하고 자신있게 주전자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붑커가 숨죽여 나에게 말했다.


붑커>>No no!  차를 따르는 건 언제나 집안의 가장 어른만이 할 수 있는거야.

나>>앗 그렇지만 엘 자디다 너희 집에서는 항상 내가 했었잖아?!

붑커>>그건 네가 하도 해보고 싶어하니까 그랬던거고, 하하.
         그리고 우리 집은 원래 free해서 그래도 돼.
         하지만 다른 집에 간다면 어르신이 하시도록 두는 것이 예의야.

나>>아 그렇구나.. 하하!   


그렇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문화가 흥미롭다.

붑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술이나 차를 따르는 일은 대부분 나이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먼저 해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말하자 붑커도 신기하게 여겼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소소한 재미를 또 한번 경험했던 하루였다. 모로코에서 홈스테이를 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별표 다섯개를 표시하자.


붑커(오른쪽)와 붑커 친구를 위해 현란한 쿠시쿠샤를 선보이고 있는 나. 식탁의 요리는 '케프쟈'라는 음식인데 다진 고기로 만들어 우리나라의 떡갈비와 맛이 비슷하다.


모로코 여행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차를 따랐던가..

그립다. 달달한 첫맛과 약간 떫은 끝맛 (어렸을 때 소주 광고에서 보았던 '부드러운 첫맛 깨끗한 끝맛'을 떠올리며).  



이왕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약간의 TMI (Too Much Information)을 풀어보고자 한다.




TMI (1)
모로코에서 차는 '아떼'라고 한다.



TMI (2)
모로코에서 아떼에 넣어 먹는 향긋한 허브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나' 하나는 '시바'
보통 둘 중 하나를 넣어서 마시지만
두 가지를 같이 넣어 마셔도 맛이 좋다.
개인적으로 시바보다 나나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나나의 향이 더 내 취향이다.
 둘째, 시바는 발음이 살짝 묘하다.  



TMI (3)
모로코 사람들은 설탕을 매우 많이 먹는다.
아떼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은 사이즈의 주전자에 아떼를 끓이더라도
가로X세로X높이 = 3cmX2cmX1cm정도 크기의 각설탕 서너개는 넣어서 마신다.
물론 이렇게 설탕을 좋아하는 모로코 사람들 중에서도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성인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는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은 No sugar를 선호한다.




이건 정말정말 TMI (4)
붑커는 설탕을 너무 좋아해서 아떼에 기본 6개의 각설탕을 넣어먹...
...다가 어머니께 등짝을 얻어맞는다.     




끝으로, 붑커가 설탕 애호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붑커를 위한 아떼를 만드는 영상을 증거자료로 제출하겠다.

 

먼저 나나를 넣고, 이어서 각설탕을 무려 7개나 투하한다. 앞에서 붑커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니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나도 단 맛을 상당히 즐긴다는 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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