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바이 짝꿍과 노나먹는 감

by 소울메이트

날씬하고 여리여리해보이는 칼티 베히자는 사실 외유내강의 오프로드 바이크다. 칼티 베히자와 함께라면 논밭 사이로 난 좁은 길도, 오래도록 발걸음이 뜸했는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산길도 무리없이 달릴 수 있다.



전북 완주군에는 수많은 제(,산 가까이에 만든 저수지)들이 있다. 그 중 간중제(용진저수지)라는 자그마한 저수지를 지나 산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작고 고요한 절 봉서사에 다다른다.

절에는 목탁소리나 풍경소리도 없이 가을낙엽만 쌓여 있었다. 방문객이 대여섯명 있었지만 너무 조용해서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바람에 스스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조금 외로워보이는 절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바이크를 막 주차하고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게 웬 커다란 흰색 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큰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려고 노력하면서 슬금슬금 도망쳤다. 개는 짖지 않았지만 자꾸만 우리를 따라왔다. 그때 휘익- 하고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개는 곧바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버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스님이 계단 위에서 개를 부르고 계셨다. 절에서 키우는 개였구나. 어쩐지 좀 착해보였다.


기웃거리며 절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까 그 스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다른 손님들에게 절을 가이드해주고 계시던 참이었다.

"이리와서 같이 설명 들으세요. 이 절에 대해서 알고 둘러보면 더 좋으니까."

봉서사는 무려 통일신라 시대에 지어진 유구한 절이다. 조선시대에 진묵대사가 출가하여 지내던 절이고, 지금은 대사의 초상화가 봉서사에 남아있는데 효심이 지극했던 대사의 그림 옆에는 그 어머니의 초상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봉서사는 본래 규모가 컸으나 6.25 전쟁때 불타고 얼마 남지 않았다. 옛날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여러 대사들이 거쳐간 절이었으며, 한강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모든 절을 총괄하는 수사찰 역할을 할 정도였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잠시 모셔지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고 다시 절을 바라보니 그 옛날 이곳을 스쳐갔을 많은 발자국들이 세월의 흔적으로 얼룩덜룩해진 돌계단에 보이는 듯 했다.

열심히 듣고 있는데 아까 그 흰 개가 우리에게 와서 자꾸만 얼굴을 부볐다. 스님은 절대 물지 않으니 무서워 말라며 우릴 안심시키셨다. 한동안 남편 옆에서 치대던 녀석이 '박범!(개의 이름인 듯 하다. 박씨인가.)' 하고 호통치는 스님의 목소리에 저만치 물러났다. 그리곤 계단을 올라오는 새로운 방문객에게 가서 또 애교를 부렸다. 또 한번 스님이 '박범!!' 하고 꾸짖으셨다. 덩치는 큰데 오는 이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이 영 귀여웠다.


봉서사 안에는 각기 다른 표정을 한 3천개의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108가지의 번뇌를 끊기 위해 108배를 하는데, 이보다 더 많은 3천가지의 번뇌를 끊어내려는 마음으로 만든 불상들이라고 한다. 잠시 그 앞에 서서 불상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상상을 했다. 내 마음은 가끔 너무 복잡해서 3천가지 번뇌로도 부족한, 셀 수 없는 생각들로 가득해지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북도 쳐보고 종도 울려보게 해주셨다. 종각에는 커다란 종과 북, 목어, 해와 달과 구름이 그려진 또다른 작은 종이 있었다. 목어를 치면 물 위의 영혼들을, 작은 종을 치면 구름 위의 영혼들을, 북을 치면 동물들의 영혼을, 그리고 큰 종을 치면 지옥부터 천국 사이의 모든 영혼들을 구제해 주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고 했다. 맘껏 쳐보고 놀다 가라는 스님 말씀에 우리는 그날 아마 구천의 영혼들을 여럿 구했을 거다.

"불교에서는 신에게 기도하나요? 무엇을 위해 기도하나요?" 남편이 스님께 여쭈었다.

"음. 불교는 어떤 신을 두고 기도하는 것은 아니에요. 부처님이 깨달으신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것이 우리 목표지요." 우리는 불자는 아니지만 이 평화로운 교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어떤 외부의 것도 아닌 스스로 내면의 지혜를 갈구하는 불교야 말로 가장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종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을 나와 칼티 베히자와 본격 산행을 시작했다. 구불구불 길을 달려 산이 높아질수록 온 산을 덮은 풍성한 단풍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다보니 길 옆에 작은 트럭 몇대가 서있고 그 옆에 가득 쌓인 홍시들이 보였다. 어르신들이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트럭에 싣고 계셨다. 상자를 깔고 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던 어른들이 바이크 소리에 우리쪽을 돌아보셨다.

"안녕하세요!"

우리를 잠시 쳐다보시던 어른들은

"여 와서 이거 좀 먹고가."

잘익어 먹음직스럽게 옆구리가 터진 홍시를 건네셨다.

"감사합니다!" 두손 가득 은 홍시가 흘러내렸다.

"더 갖고 가. 오도바이 짝꿍이랑 노나먹어."

이대로 주시는대로 받았다가는 바이크 뒤에 홍시 한상자는 싣고 가게 생겼다.

우리는 입에 홍시를 잔뜩 묻힌채 감사인사를 하고 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맘씨 좋은 스님과 마을 어르신들 덕에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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