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자디다에서 한 집에 살고 있는 조카 둘, 카사블랑카에 사는 조카 둘, 라바트의 조카 여럿, 또 프랑스에 사는 조카 셋... 내가 아는 조카들만 해도 이정도인데 아마 먼 친척까지 따지면 더 많을거다.
엘 자디다의 조카 두 명은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오마이마'와 고등학생 '에이멘'이다. 그 둘은 유년기부터 붑커와 한 집에서 자랐고 나이 차이도 붑커와 열살 남짓이어서 조카라기보다 형제에 가깝다.
4년 전 처음 엘 자디다의 집에 놀러갔을 때 에이멘은 아직 사춘기도 겪지 않은 꼬마였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표정이 정말 귀여웠는데. 그랬던 꼬맹이가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는 4년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더 키가 자라있었다. 이제는 어쩌다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고어색하게 눈을 피한다. 밥 먹을 때도 귀에 이어폰을 낀채 말한마디 없이 후다닥 밥만 흡입하고 제 방으로 사라진다. 다 컸다고 옥탑에 방도 따로 생겼다.그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이 유치해 보이고 괜스레 고독을 즐기고 싶어지는 시기.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런 에이멘에게도 아직 귀여운 구석이 남아 있다.
에이멘을 웃게 만드는 건 어렵지만 붑커가 알려준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에이멘 알러뷰! 사랑해!"
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저 말을 들으면 에이멘은 진짜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기지 못한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에이멘 보고스 (잘생겼다)!"라고 하면 부끄러움이 폭발한 에이멘은 그 자리에서 도망갈지도 모른다.
폭풍성장한 에이멘.
에이멘은 그 또래 남학생들이 흔히 그렇듯 시크하고 과묵하다.요즘 붑커와 영상통화를 할 때 붑커 가족들이 옆에 있으면 가끔 인사를 하는데,에이멘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하면저 멀리 사라진다. 쑥스러워서 그런 걸 다 알면서도약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 에이멘은 날 보면 도망가..
붑커>> 에이멘 엄청 부끄러움 타잖아. 근데 사실 너 엄청 좋아해.
나>> 진짜?
붑커>> 응. 너 모로코에 있을 때 나한테 에이멘이 뭐라고 했는지 내가 말해줬던가?
나>> 아니?
붑커>> '저만큼 형을 좋아해줄 사람은 없다. 저 누나랑 결혼해라.'고 했어.
크으. 이 중요한 걸 왜 이제야 말한담.
마치 '절대로 A학점을 안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으로부터 A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Aymen(에이멘).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이겨내고 속 깊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