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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Apr 14. 2024

모로코에서 받은 청혼

대학 졸업 후 엄마와 함께 스페인을 여행할 때였다. 지브롤터 해협만 건너면 금방 닿는 모로코였기에 우리는 붑커를 만나러 며칠간 모로코도 들르기로 했다.

붑커는 엄마와 나를 오래전부터 모로코에 초대하고 싶어 했는데 드디어 호스팅하게 되어 굉장히 기뻐했다. 손님을 극진히 환대하기로 유명한 모로코 사람 다웠다.

 

우리는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앞에서 붑커를 기다렸다. 넓은 광장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붑커가 어디 있나 요리조리 찾고 있을 때였다. 만치서 총총총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붑커였다!

처음으로 붑커를 만났을 때 아담한 체구와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라인상에서 문자만 주고받을 때는 좀 더 키가 크고 굵직한 외모를 상상했 때문이다. 시원시원 대범한 말투만을 가지고 미루어 짐작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붑커는 살갑게도 엄마와 나를 포옹으로 반겨주었다. 그마한 몸이 품에 쏙 들어왔다. 이렇게 붑커의 첫인상은 고 귀여웠다.



예상 밖의 외모와 달리 붑커의 성격은 그동안 대화하면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비록 온라인 대화뿐이었지만 거의 2~3년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붑커는 모험심이 강하고 로운 도전을 하는데에 거침이 없었다. 나와 달리 이미 홀로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똑 부러진 면이 있었다. 친구이지만 존경스러운 마음도 생기고 닮고 싶기도 했다.

붑커네 집이 있는 엘자디다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엄마와 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여기도 가볼까 저기도 가볼까 하며 붑커는 온 엘자디다를 보여주었다. 저녁에는 붑커네 가족들과 한 식구처럼 밥 먹고 떠들며 놀았다.



그렇게 며칠이 훌쩍 지나 엄마와 나는 마라케시로 떠나게 되었다. 붑커는 우리를 위해 짧은 휴가를 냈던 거라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 해서 마라케시까지는 같이 가지 못할 상황이었다.

마라케시로 가는 택시를 타기 전 붑커와 둘이서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그때 붑커가 물었다.

"우리 결혼할래?"

뜨헉.

갑자기 결혼이라니. 저기.. 우린 3일 전에 처음 만났단다..

조금 당황스러웠. 매우 당혹스럽지는 않았던 이유는 사실 붑커가 그전부터 몇 번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 얘기까지 꺼낼 줄은 몰랐다.

"내가 왜 좋은데?"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너는 정말 활동적이야. 봐봐. 내가 바닷가에 가자고 했을 때, 낚시를 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오마이마(조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봤을 때, 야히야(또 다른 조카)를 데리고 같이 산책을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 너는 모든 걸 함께 했고 한 번도 그냥 쉬고 싶다고 한 적이 없어. 내가 봤을 때 너는 뭐든지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나는 너와 비슷해. 그런 너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아니 왜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붑커는 진짜 이렇게 대답했다. 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건 뭐 로맨틱하지도 않고 공감되지도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너의 이러 이런 점이 좋아서 만나보고 싶어.'라고 하지 않나. 대뜸 '너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 결혼하자.'라니.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를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리고 너희 엄마가 너무 좋은 분이라 네가 더 좋아졌어. 머니께서 너를 잘 키워주셨을 거니까."

이 말은 좀 감동이었다. 실로 붑커네 가족들 사이에서 엄마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매사에 잘 웃고 친절한 엄마를 모두가 좋아했다. (그러니까 이 결혼의 발단은 절반 정도가 엄마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예고 없던 청혼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마라케시로 향했다. 커에게 대답은 제대로 하지 않았고 딱 잘라 거절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나도 아예 호감이 없었다면 붑커네 집까지 놀러 가진 않았을 거다. 그것도 엄마랑 같이. 그래도 결혼은 좀 빠르지 않은가? 아니 잠깐. 그럼 사귀어 볼 의향은 있다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 결혼까지는 아니라도 만약 만나보기로 한다면. 그다음엔 어떡할 건데.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럼 계속 메신저로만 연애를 할 건가. 옆나라도 아니고 모로코인데 만나고 싶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찌해서 연애까지는 해본다고 쳐도 결혼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모로코에 가서 같이 살 것인가? 나는 이제 막 졸업해서 사회에 갓 자리를 잡을 차례인데 타국으로 떠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외동딸이 떠난다고 하면 엄마아빠가 반기실리 없었다. 그럼 붑커가 우리나라에 올 것인가? 붑커는 가족들과 사이가 각별하고 또 대가족이라 다들 붑커와 떨어지기 싫어할 거야.


"엄마. 나 붑커랑 결혼하면 어떨 거 같아?" 결국 엄마에게까지 물어봤다. 당연히 안된다고 하시겠지?

"결혼하고 싶으면 해~"

오 마이갓. 엄마는 너무 쿨하게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대신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말씀을 덧붙. 마가 '아무래도 국제결혼은 좀 힘들지 않겠어?'라고 완곡하게마 반대의사를 보이셨다면 나도 그에 따라 땅땅땅 결론을 지으려고 했는데. 이제 고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는 붑커가 좋았다. 게 없는 용기와 자신감이 붑커에겐 넘쳐흘렀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하면서도 때로는 강단 있었다. 이런 면들 때문에 직접 만나기 전부터 붑커에게 동경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의 붑커는 나에게 한참 과분했다. 런 붑커가 우리가 비슷하다고 말하다니. 말일까. 나도 몰랐던 나의 특별함이 그에겐 보인 걸까. 아니면 와 있을 때 내가 특별해질 수 있는 걸까. 러고 보니 붑커와 있으면서 마음이 참 편했고 모든일에 의욕이 넘쳤던 것 같기도 하다. 커의 말을 떠올리며 깐동안 께 여행을 하는 상상을 했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정말 소울메이트일지도 모른다. 처럼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꿈이 아니다.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역시나 다시 생각해도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설렜던 마음이 차게 식었다. 아무리 서로 잘 맞고 행복하더라도 그만큼 우리가 견뎌야 할 이면의 어려움들이 행복을 갉아먹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마음을 정했다. 한 자 한 자 찍으면서 조금은 아쉬웠고, 전송을 누르기까지도 미련이 엄지손가락을 망설이게 했지만. 마침내 붑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우리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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