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그렇게 붑커와 작별을 한 뒤 우리는 조금 어색해진 상태로 드문드문 끊길 듯 안 끊기는 거미줄처럼 연락을 이어갔다. 가끔 가족들의 안부도 묻고 서로의 근황도 전했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어른에 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우리는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나는 타지에서의 직장생활을 마침내 끝내고 본가에 돌아왔다.길고긴 터널을쉼 없이 달려 이제 막 빠져나온 것 같았다.잉여시간이 생긴 만큼 마음의 여유공간도 넓어졌다.무념무상으로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던수많은 것들이 무너진 둑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처럼 머리를 채웠다. 뭔가에 홀렸는지 갑자기 모로코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붑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다음 달에 모로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왜 하필 모로코였을까. 아마도 나는 4년 전 어물쩍 미뤄두었던 붑커의 물음에 대한 답을 확실히 매듭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로 지내자고는 했지만 어쩐지 붑커를 떠올리면 항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그게 잘한 결정이었는지 미심쩍었다. 4년 전에는 당장 눈앞에 쌓인 일들이 내겐 먼저였고, 붑커의 꿈같은 제안은 팔자 좋은 소설 속 이야기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빠르게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회가 왔을 때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때의 내 선택이 맞았는지 아니면 어리석은 속단이었는지. 후자라면 되돌릴 여지가 있는지도.
붑커와의 시간은 더도 덜도 아닌, 내 상상 속의 그것과 꼭 같았다. 결혼을 결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결국 이럴걸 괜히 내가 일을 그르쳐서 쉽게 갈 길을 돌아간 건 아닐까.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렇지만 붑커의 말처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어쩌면 이게 우리에게 정해진알맞은 때였을 수도 있다. 이게 합리화라 할지라도 지나버린 시간은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부터 함께하는 추억을 부지런히 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