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May 22. 2024

지도 위에 완성된 발자취

17일 차: 아산->익산

벌써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애초에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채로 시작했던 일종의 모험이었다. 뚜렷하게 정해진 경로나 목적이 없이 발 닿는대로 떠나는, 방랑에 가까운 여행. 그랬기에 설령 한바퀴를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며 마음을 가볍게 먹었던 우리였다.

그렇게 큰 기대없이 디뎠던 첫걸음이 감사하게도 17일만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아산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암민속마을에 들렀다.

서민의 가옥, 양반의 가옥, 사랑채, 안채, 부엌, 곳간 등 옛 생활상을 현해 둔 곳이다. 전주와 경주의 한옥마을에서는 주로 기와집만 보였는데, 외암민속마을에서는 남편에게 초가집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붑커>> 이 지붕은 볏짚으로 만든 거지?

나>> 응 맞아.

붑커>> 신기하다. 모로코에서도 시골에 가면 똑같은 생김새의 지붕을 볼 수 있어. 대신 볏짚이 아니라 우리는 밀짚을 써서 만들었어.

나>> 우와, 지붕이 똑같다고? 모로코와 한국은 알고 보면 닮은 점이 정말 많다니까.

두 나라 문화의 공통점을 발견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법, 요리법, 족이나 이웃간의 관습 등, 멀리 떨어진 두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같은 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비록 각자의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과거에 서로 비슷한 문화를 지녔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남편과 이지 않는 태생적 연결고리를 공유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한옥의 구조 중 아궁이에서 온돌로 이어지는 난방 시스템을 볼 때마다 천재적이라며 가장 좋아한다.


내려오는 길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큰 도로로만 빠르게 달려서 그랬는지, 월요일이라 차가 드물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오늘로서 라이딩이 끝난다는 시원섭섭함 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중간지점인 공주의 한 커피숍에서 쉬어간다. 창 밖으로 금강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였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남편과 언제나처럼 잡담을 나눴다.

나>> 이 강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아?

붑커>> 어딘데?

나>> 우리 그전에 등산했던 함라 있지. 그 때 봤던 강이랑 똑같은 강이야.

붑커>> 와, 정말?? 엄청 긴 강이네!

나>> 응. 군산 바다로 이어지는 큰 강이지.

우리도 이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제 정말 집에 가까워졌다.



다시 바이크를 달린지 얼마 안되어 익숙한 동네가 보인다. 익숙한 신호등을 지나고 익숙한 골목을 돌아 익숙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이크의 시동이 멈추고 헬멧을 벗은 뒤 우리는 후우 하고 후련한 숨을 내쉬었다.

17일, 20여개 도시를 거쳐, 약 2000km를 바이크로 달려 제자리로 돌아왔다.


채 끝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와야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부지런히 달렸더니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여유롭게 돌아오게 되었다. 3주 안에는 귀가해야 했던 터라 부득이하게 생략했던 도시들도 있어 그건 좀 아쉽다.

남편은 '이번엔 가장자리로 한바퀴를 달렸으니 다음에는 지도를 가로질러 달려보자'며 지도의 나머지 부분들에도 언젠가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했다.



여행이 끝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면서 잊고 있던 피로가 한번에 몰려왔다. 아산의 온천수로도 온전히 소되지 않았던 독을 풀기 위해 우리는 오랜만의 길고 긴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뜬 우리.

남편이 연덕스럽게 묻는다.

붑커>> 배낭은 다 챙겼어?

나>> 응? 무슨말이야?

붑커>> 배낭 빠트린거 없이 챙겼냐구. 우리 오늘은 어디 갈 차례지?

나>> 아~ 뭐야, 하하하하.

매일 아침 배낭부터 싸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칠동안 해오던 걸 갑자기 안하려니까 허전하다. 당장이라도 배낭을 바이크 뒤에 묶어 싣고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떠남을 잠시 멈추고 제자리에 머물러 그동안 쌓인 추억들을 돌아볼 차례이다.


여행중 하루하루 라이딩을 끝낼 때마다 '운전 해줘서 고마워.', '와줘서 고마워.'로 서로 인사 하곤 했다.

오늘은 끝맺음 인사로 여행을 마무리 해본다.


"이 멋진 여행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17일째. 140km 이동하여 귀가.


이전 15화 다시 남쪽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