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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2. 2024

바이크 여행을 마무리하며

#에필로그

우리의 첫 국내 장기여행남편의 첫 대한민국 일주였던 이번 여행이 무탈히 마침표를 찍었다.

무엇보다 바이크를 타고 한 여행이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좀더 피부로 가까이 느낄 수 있었.

바퀴 두 개에 의지하여 헬멧 외에는 보호장비 하나 없이 떠난 여행이라 더욱 아찔하기도 했지만. 그 대신 공기 한 점, 풍경 한 폭까지 오감을 활짝 열고 온몸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또 바이크의 장점이기도 하다.


먼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하루하루 짧게는 70km부터 길게는 150km도 넘게 달려왔다.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면서도, 바람 불어 휘청이는 바이크를 꽉 붙들어가면서도, 장거리 운전으로 어깨가 뭉치고 다리가 저리는 와중에도 항상 혈을 기울여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해준 남편 덕분에 다치지 않고 행복한 추억만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바이크를 운전할 줄은 모르지만 이번에 남편 뒤에 동승하면서 바이크와 운전에 대해 상식을 좀더 쌓게 되었다. 어깨 너머로 보는 것도 있고 남편이 수시로 교통규칙이나 바이크 운행시 주의할 점, 요령, 바이크 관리법 등을 가르쳐 주어서 비록 운전은 하지 않았더라도 '함께 바이크를 탄다'는 기분이 들면서 이 여행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열정이 생겼던 것 같다.


사실 둘이서 바이크를 탈 때는 동승자의 역할이 꽤나 중요하다. 승자가 운전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힘들 운전자에게 짐을 뭉텅 얹어주는 격이다.

일단 덩이를 마음대로 움직여선 안된다. 나의 첫 바이크 탑승은 신혼여행에서였는데, 처음엔 모르고 엉덩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막 고쳐앉곤 했다. 남편이 그러면 바이크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알려주어서 그 뒤부터는 매우 조심한다. 승자는 바이크 안장에 엉덩이를 평온하게 올려놓고 운전자가 이끄는대로 따라가야 한다. 번 여행에서도 좀이 쑤실라 치면 '내 엉덩이는 자아가 없다'를 되뇌며 고요한 자세를 유지했다.

둘째, 운전자와의 간격도 중요하다. 너무 딱붙어서 운전자를 앞으로 밀어부치면 당연히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뒤로 떨어져 앉으면 운전자가 바이크를 컨트롤할 때 무거움을 느낄 수 있다. 헬멧끼리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사이를 두고 운전자에게 몸을 밀착시키되, 운전자의 엉덩이를 밀치지는 말아야 한다.

셋째, 약간의 센스가 필요하다. 람이 세게 불면 운전자의 등에 좀더 딱 붙어서 공기 저항을 줄여준다. 운전중 놓치기 아까운 풍경을 만나면 두손이 자유로운 동승자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남겨줘야 한다. 운전자가 피곤해 보이면 잠시 정차했을 때 승모근을 살살 마사지 해주는 상냥함도 갖추면 금상첨화다.


바이크 동승도 오래 하다보니 요령이 생긴다. 이제는 남편도 인정한 좋은 바이크 라이딩 파트너가 되었으니, 내 스스로에게도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위험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크게 기억나는 위기는 네다섯있었다.

보성여행 편에서도 언급했던, 비가 쏟아지는 도로에서 우리 바이크에 바짝 붙어 추월했던 차가 있었다.

울진에서는 하마터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힐 뻔 한걸 간신히 들을 틀어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 때 남편과 나 둘다 순간 몸이 뻣뻣하게 얼어서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진정한 다음 다시 움직였던 게 생각난다.

남양주에서는 한 초보운전 차량이 좌측 신호를 넣고 갑자기 우측으로 틀어서 남편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불과 몇센티미터 차이로 추돌을 면했던 적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놀란 모습은 그날 처음보았다. 차량 운전자분이 거듭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 했다.

바이크라고 예외는 아니다. 북한강변에서 커브길을 도는데 측으로 소리 없이 달려와 쌩하고 추월해 나가던 바이크.. 때문에 가슴을 또 몇번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지막날 공주에서 우리 뒤에서부터 갑자기 오른편으로 끼어들어 빠앙 경적을 울리며 추월했던 차가 있다. 바이크가 좌우로 휘청하며 쓰러질 뻔하다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여보야 저 차 쫓아가자! 한마디 하게." 했는데 남편이 나를 진정시켰다. "너무 그러지 마. 세상 모든 운전자가 착하고 똑똑할 순 없어. 오늘 저런 차 딱 한대 만났잖아. 이런거 하나하나 신경쓰고 화내면 운전 못해." 렇다. 남편 말이 다 맞아서 심호흡하며 분을 삭였다.(아 쓰다보니까 솔직히 아직도 화난다. 바이크나 승용차나 우측추월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순간들을 그동안 전부 적지 않았던 건 여행의 즐거움에 덮여서 잊어버린 것도 있었고, 이 글을 우리 부모님도 들어와서 보시기 때문에 걱정을 끼치기 싫어 그러한 것도 있다. 이제 여행은 끝났고 다 지난일 까짓거 웃어 넘길 수 있을테니 감없이 적어본다. 헤헷.



보름 남짓한 시간동안 좋은 분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먼저 가라고 양보해주던 모든 차량들. 빗길에 우리 바이크를 앞지르지 않고 저속으로 뒤에 따라와 주던 어떤 운전자분. 나가며 엄지를 추켜세우며 인사하던 바이커들. 심해서 가라며 우리가 출발할 때 팔을 휘휘 저어 주차장 앞 도로의 차들을 정리해 주신 차안내요원분..

그분들이 있어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붑커>> 우리가 해냈네!

나>> 그러게. 이렇게 우리나라 전국을 일주한 외국인은 많지 않을 것 같아.

붑커>> 후훗, 그렇겠지?

나>> 그것도 우리나라에 살게 된지 불과 2년 만에 이 정도로 여행한 외국인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이 여행은 남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를 한바퀴 돌아보자는 것도, 바이크를 타고 가자는 것도 남편의 생각이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정착해서 사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느새 새 삶에 위화감 없이 녹아들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이런 여행까지 계획는 남편이 기특하다.

또 그만큼 남편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게 느껴져서 기쁘기도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은 "나는 한국이 단기간에 초고속 발전을 이루어낸 나라기 때문에 온 나라가 산업화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지역별로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있고, 자연환경도 잘 보존되어 있고, 특히 산이 이토록 많을줄은 몰랐어."라며 놀라워 했었다. 리나라 지도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맘에 드는 곳을 표시해두기도 하고, 나중에 꼭 가보자며 궁금해 했다.



우리나라를 한바퀴 돌면서 남편은 이 나라에 대한 금증이 조금 풀렸을까.

비록 모든 도시를 빠짐없이 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길다면 길었던 여정동안 남편이 한민국의 진면모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면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 그래, 이제 여행 후의 소감을 한번 말씀해주시죠.

붑커>> 음.. 잠시만. 나 정리할 시간 좀.

몇분을 차분하게 앉아 생각 남편 을 열었다.

붑커>> 첫번째. 한국은 진짜 아름다워. 지루하지 않고 지역마다 개성이 뚜렷해. 특히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가볼만한 장소들이 숨어 있어. 구석구석 탐험하고 발견할 가치가 있는 나라야. 그래서 더 바이크 여행을 추천하고 싶어.

두번째.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은 솔직히 엄청 안전해. 우리는 2000km 가량을 달렸어. 바이크로 이만큼 장거리를 달리면서 사고 한번 나지 않는 건 정말 쉽지 않아. 가장 큰 이유는 도로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노면이 끗하게 닦여있고 도로의 폭도 넓어. 이런 면에서 나는 한국이 태국,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보다도 바이크 운전하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해. 모로코 보다도 그렇고. 거기서는 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에 바이크들이 다니는 좁은 도로가 따로 있잖아. 그 길은 보통 울퉁불퉁 요철이 심해서 넘어지기 쉬워. 한국에서처럼 차들과 함께 큰 도로에서 바이크를 달리려고 하면 바이크들보고 옆길로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바이크도 차와 동일하게 취급해주니까 좋아. 나는 예전에 베트남에서도 바이크 여행을 했지만 1500km를 달리는 사이에 세 번의 사고가 있었어. 번은 개를 피하려다, 한번은 좁은 도로에 파인 구덩이를 지나다, 한번은 사람을 피하다가 넘어져서 다쳤어. 큰 도시에 가면 반대차선으로 역주행을 해서 추월하는 버스들도 자주 있어. 이와 비교하면 우리의 이번 여행이 얼마나 안전했는지 지? 아, 그리고 한국은 고속도로에서 바이크를 못 타게 되어 있잖아. 나는 이 규정도 괜찮은 것 같아.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고속도로에서 나면 훨씬 클 거 아니야. 이런 규정 덕에 더 안전하다고 느껴져.

세번째. 있는 식과 따뜻한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어. 한국은 가는 곳마다 그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이 있어. 도시별로 서로 전혀 다른 재료와 양념을 써서 양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있었어. 무엇보다 하나같이 맛있었어.

또 사람들이 친절했어. 특히 외국인은 더욱 환대해 주는 것 같아. 마주칠 때 손을 들어 인사해주던 바이커들도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마지막. 경찰이 검문을 하지 않아. 모로코도 그렇고 다른나라에서는 경찰이 불시에 도로에서 면허증과 보험증서를 검사하곤 했어. 근데 한국은 그런 게 없어서 불필요하게 자주 멈추지 않아도 되어 좋았어.

나>> 오 그렇구나. 안 좋았던 점은? 없었어?

붑커>> 음.. 없었어. 딱 한번, 그때 빗길에서 우리 칠 뻔했던 차를 만났던 것만 빼고 하하.

 



이번에 나는 남편에게서 용기와 추진력을 배웠다. 이밖에도 같이 여행하면서 로는 '이런면도 있었네'하는 생각 들게 하는 간들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봐온 남편은 진지할 때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장난 있고, 고지식하기보단 형식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전을 할 때는 누구보다 엄격했  규칙지라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신뢰가 갔다. 전에 같이 여행을 하거나 등산을 하면 내가 조심좀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괜찮아 괜찮아~'하며 높은 바위도 성큼 오르고 깊은 물속도 서슴없이 들어가곤 했던 남편이었다. 데 바이크를 탈 때만은 '바이크는 장난이 아니다. 실수 한번 하면 두번의 기회는 없다.'며 자못 진중다. 그래서 썩 용감하진 못한 편인 나도 남편을 믿고 바이크 위에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자랑스러웠던 것.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 공주에서 논산 사이의 국도를 달리는데 어딘가에서 날아왔는지 도로 중앙에 쓰레기가 담긴 커다란 봉투가 놓여있었다. 차들이 비상등을 켜며 속도를 늦추고 봉투를 피해가고는 있었지만 그대로 두면 위험해 보였다. 남편은 잠시 바이크를 갓길에 세우고 잠깐 도로가 빈 틈을 타 쓰레기봉투를 집어서 도로 밖으로 치워냈다. 다른 운전자들을 배려하는 남편의 마음씨가 뻤다.



남편이 생각하는 나도 무언가 배울점이 있는 배우자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남편도 나랑 계속 같이 여행하는 걸 보면 썩 나쁘지 않은 파트너이긴 한 모양이다.



겁도 조심성도 많은 편이라 살면서 조금 무모하다 싶은 일에는 브레이크를 밟기 일쑤였던 나를, 과감하게 액셀 한번 밟아보도록 도와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을 전한다.


그리고 그 길을 주저없이 가도록 응원해주신 부모님과 시댁식구들에게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끝으로 이 여정을 함께 따라와주며 즐겨주시고 안전을 기원해주신 독자님들에게도 진심으로 사드린다.


<바이크 타고 대한민국 한바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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