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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Aug 18. 2024

엄마만 모르고 있었지롱!

결혼한지 2년만에 남편의 고향 땅을 밟았다.

마라케시 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쓰읍- 하아~! 익숙하고도 그리웠던 땅의 냄새를 맡는다.

나>>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어때? 행복하지?

붑커>> 그럼! 엄청 행복하지.

집을 떠나온지 불과 두달 사이에도 한국이 그리워지곤 하는데, 남편은 오죽했을까. 서로의 고향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건 러브스토리를 좀더 극적으로 만들어주지만, 이럴 땐 참 야속하기도 하다.



마라케시에서 택시를 타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엘자디다로 향한다. 버스를 타면 좀더 싸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도 미지수라 사람들은 웬만하면 택시를 이용한다.

포장이 되다 말아서 흙먼지가 날리는 좁은 도로를 오래된 택시가 삐걱대며 덜컹덜컹 달린다. 양 옆으로는 아주 드문드문 나무가 자라는 황색 평야가 펼쳐지고 가끔씩 지붕이 낮은 집들이 모인 주택가가 나타난다. 몇년 전 같은 길을 엄마와 함께 시타고 이동했었는데. 새삼 시간이 쏜살같다.

 

마라케시에서 엘자디다 가는 길


오늘의 택시 기사님은 격이 급한 편이시다. 마주오는 두 차가 간신히 스쳐 지나갈만한 도로를 날듯이 달려간다. 앞에 보이는 차들은 지체없이 추월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기술을 선보이신 덕분에 우리의 심장은 살짝 쪼그라들었다. 그덕에 가족들을 빨리 만날 수 있어서 좋기는 하였다.  


우리는 일부러 8월에 맞춰 모로코에 왔다. 여름휴가를 맞은 가족들이 모두 엘자디다로 모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사는 큰누나인 레일라가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와 있고, 카사블랑카에 사는 둘째누나 일함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집안이 북적북적 할 터였다.



택시는 엘자디다 버스터미널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저만치에 우리를 데리러 온 일함누나의 하얀 승용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함! 일함! 여기 여기!"

우리는 무인도에 다가온 구조선을 발견한 조난자들처럼 방방 뛰며 차가 오고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차 안에는 막내누나 나오엘도 타고 있었다.

"살라모 알라이쿰!!"

차에서 내린 누나들이 그 어느때보다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2년만의 만남이었다.

더운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끈적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꼬옥 안고 있었다. 누나들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며 남편의 등짝을 찰지게 때리며 웃었다.

나는 일함 누나의 품에 엉거주춤하게 안긴 상태로 물었다.

"저기, 죄송해요. 저 너무 냄새나지 않나요..?헤헤.."

만 3일을 못씻은 상태로 얼굴을 맘껏 부비며 포옹을 하기가 좀 민망했다. 야간버스를 탄데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거의 2일이 지났고, 비행기에서부터 엘자디다 도착까지 또 반나절이 지났는데 게다가 땀까지 흘렸으니. 남편도 나도 집에가서 씻으면 구정물이 줄줄 나올 것 같은 몰골이었다.

누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노 프라블럼." 냄새가 안난다곤 안하신다..



오늘 만남의 중요 포인트는 바로 엄마를 위한 서프라이즈이다. 다른 식구들은 우리가 오늘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 엄마에게만 깜짝 선물로 선보이기 위해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차가 집앞에 도착했다. 차 시동이 꺼지자마자 베란다에서 우리가 오는 걸 지켜보고 있던 조카들이 우르르 밖으로 달려나온다.

"안녀엉~!"

나는 반사적으로 인사가 나와버렸고 조카들은 경악하며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쉬쉬쉬쉬!!"

아 맞다. 열린 창문을 통해 엄마가 소리를 들으시면 안되지. 우리는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잠복원들처럼 쉬쉬하며 계단을 올랐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드디어 작전시행의 순간이다. 우리가 거실에 서 있는 사이 누나들과 조카들은 부엌에 계시는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3, 2, 1, 짠!! 누가 왔는지 보세요!"

엄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잠깐 놀라시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반겨주셨다. 짝짝짝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우리는 긴 포옹을 나눴다. 난 마음 약한 엄마가 혹시나 우실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웃음만 만발이었다. 모두가 웃는데 엉뚱하게도 나만 눈물이 핑 돌아서 남모르게 슬쩍 눈물방울을 훔쳤다.


붑커>> 우리 오는 거 엄마 빼고 다 알고 있었는데. 레일라 누나까지 깜빡 속일 줄은 몰랐지?

거짓말 못하는 성격인 큰누나 레일라까지도 남편의 신신당부에 그동안 입을 단단히 봉하고 있었다. 엄마는 남편의 여전한 짓궂음에 고개를 저으시면서도 매우 행복해보이셨다.


우리는 예전처럼 큰 테이블을 거실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았다. 거친 표면의 홉스(빵의 한 종류)가 하나씩 각자의 자리에 놓였고, 가운데에는 츠칼리야(소나 양의 내장 요리)가 놓였다.

가족이 다 모인 식사가 얼마만인지. 모두가 먹기 보다는 얘기하기에 바빴다.

엄마의 집이 요근래 가장 시끌벅적해진 날이었다.


냉장고 문도 여러 나라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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