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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Aug 31. 2024

여자들은 어서 오시오!

모로코에는 여자들만의 특별한 파티가 있다.

결혼을 비롯하여 경사로운 일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같이 모여 놀고 싶을 때면 언제든 상관없이 파티를 열 수 있다. 대신 주최자는 초대한 모든 손님을 먹이고 재울 준비를 갖춰두어야 한다.  


엄마(시어머니)는 나와 남편이 오랜만에 방문한 기념으로 파티를 열고 싶어 하셨다. 우리는 사실 이 파티가 그렇게 반갑지 않았는데, 한번 시작하면 엄마는 손님 대접을 하느라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강력히 원하셨기에 아무도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 친지, 이웃 등등 다양한 분들이 초대를 받았다. 한가지 특징은 초대받은 모두가 여자였다는 것이다. 파티의 핵심은 식사 후 다같이 둘러앉아 몇시간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인데, 이 시간은 여자들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오더라도 딱히 즐길거리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혹여 초대를 받더라도 한끼 식사 정도만 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집안 식구들 중에서도 남자들은 분리된 방에서 따로 식사를 하고, 여자들이 응접실에서 노는 동안에는 다른 방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밖으로 나간다. 따라서 이날은 오로지 여자들만의 축제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남자들은 함께 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모로코의 전통 춤이 남자들과 섞여 추기에는 조신(?)하지 못한 편기 때문이다. 골반에 악세서리가 찰랑이는 두건을 두르고 흔드는 것이 모로코 여성들의 춤의 기본 동작이다. 주로 팔다리의 절제된 동작으로 이루어진, 다소 정적인 한국무용과는 매우 다른 모양이다. 따라서 여자들끼리만 모여서 부끄러워할 것 없이 맘껏 춤판을 벌이는 것이다.


아래는 전형적인 모로코의 춤이다. '샤비'라는 빠른 리듬의 음악에 맞추어 골반과 쇄골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댄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팝핀이 빠르면서도 관절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움직일수록 잘 춘다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모로코의 춤도 마치 골반과 상체가 따로 노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도록 추는 사람이 좋은 춤꾼으로 인정받는다.

https://youtu.be/jVn4LaxMKvs?feature=shared


'샤비'는 춤을 추기에 최적화하여 작곡된 모로코 음악의 한 종류이다. 는 엄마의 고향인 엘 자디다에서 만들어진 음악이기도 하다. 샤비의 고향에서 태어난 분인 만큼 엄마는 흥이 많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신다.

엄마는 스무명이 넘는 손님을 초대하여 분주하셨지만, 두가 모여 노래를 틀고 북을 치며 노래하는 시간에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셨다. 엄마의 몸속엔 모로코에서 흥이 넘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 두칼리아(엘 자디다 출신의 사람을 두칼라, 두칼리아 라고 부른다)의 피가 흐른다.


엄마가 준비하신 쿠스쿠스. 커다란 끄사리야(넓은 도자기 쟁반) 세개가 넘쳐나는 분량을 요리하셨다.


모로코 사람들은 대부분이 훌륭한 리듬감각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타리자'라는 악기를 능히 다룰 줄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타리자의 크기는 하반신만큼 큰 것부터 손바닥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모양은 원통형인데 한쪽으로 갈수록 통이 커져서 절반은 장구와 비슷하기도 하다.

여자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에도 이 타리자는 빠질 수 없는 악기이다.

https://en.m.wikipedia.org/wiki/Taarija


타리자 리듬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영상이 유튜브에 있기에 가져왔다.

https://youtu.be/h0v5WKnEg64?feature=shared



엄마는 나에게 파티에서 입을 옷을 선물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옷감으로 만들어진 툭시따(아래와 같이 생긴 모로코 옷의 한 종류)였다. 젤라바나 까프탄보다 좀더 하늘하늘 하면서 또 다른 스타일의 옷이었다.


초대된 손님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재작년에 라바트에서 만났던 남편의 친척인 아미나와 마리암, 단 두명 뿐이었다. 나머지 분들은 처음 뵙는 엄마의 친적이나 지인 분들이셨다. 우리 아랫집에 사시는 이웃 아주머니도 초대되어 오셨지만 역시 만나뵙는 건 처음이었다.

가족들도 섞여 있었지만, 낯선 사람들 속에서 같이 춤을 추려니 영 쑥스러웠다. 그래도 엄마가 나와 남편을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셨는데 가마니처럼 앉아만 있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그래 내가 또 어디가서 엉덩이를 흔들어보겠냐'하는 생각으로 그날 만큼은 내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 춤판을 벌였다.

신기하게도 같이 춤을 추다 보니 언제 부끄러웠냐는 듯 무리에 섞여 들게 되었다. 다들 '어머나 열심히 추네~'하면서 호응을 해줘서인지 은근 재미도 있었다. "모로코 춤을 춰보는 게 정말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머 근데 너무 잘 춘다~"하며 입을 모아 칭찬을 해주니 '내가좀 추나? 한판 더 달려 봐?'하는 자신감까지 았다. 나는 칭찬을 먹고 춤추는 고래처럼 '내가 바로 하디자(시어머니 성함)의 며느리오! 다들 내 춤 좀 보시오!'하고 온몸으로 표현하며 파닥파닥 뛰어다녔다.


엄마랑도 추고, 시누이들과도 추고, 아랫집 아주머니와도 추고, 이름 모를 이모님과도 추고.

우린 해가 질 때까지 칼로리를 팍팍 태우며 격한 가무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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