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가족들과 지낼 때는 가급적 영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남편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식구들과 영어 대화가 가능함에도, 의도적으로 모로코식 아랍어인 데리자(darija)로 말하려고 한다.
단순히 모국어 외의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훗날 육아를 하게 되었을 때 아이와 한국말로든 모로코말로든 자유자재로 대화하고 싶어서이다. 학교에서 12년을 넘게 공부해도 뜻대로 안되는 게 영어인데, 다 커서 배우기 시작하려는 데리자는 말할 것도 없이 어렵다. 게다가 그 발음과 표현이 영어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서 익히기가 쉽지 않다.
언어에 왕도는 없는 것 같다. 그저 계속 정면돌파식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로코 가족들과 같이 지내는 이 한달 남짓의 기간이 더욱 소중하다. 몸소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데리자를 연습할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틀리고 엉망진창인 문장이라도, 한마디 더 내뱉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말을 건네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남편과 있을 때는 답답하면 곧장 영어로 방향을 틀곤 했는데, 데리자만 쓰시는 엄마(시어머니)나 데리자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큰시누이 레일라(현재 프랑스에 거주 중)와 있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얼마 안되는 어휘력을 쥐어 짜내어 대화를 하게 된다. 한번씩 그렇게 하고 나면 다음날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 자신을 발견한다.
아침마다 레일라 언니는 가족들과의 아침식사를 위해 빵을 사러 동네를 한바퀴 돈다. 이 때 나도 일부러 같이 따라 나선다. 아침 준비를 하는 데 나도 뭔가 거들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레일라 언니랑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데리자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어서이기도 하다. 또한 동네 빵집과 마트들을 돌면서 직원분들과 나누는 대화도 큰 도움이 된다.
처음엔 띄엄띄엄 더듬으며 했던 말들이 날이 갈수록 아주 조금씩 자연스러워 진다.
살라모 알라이쿰(안녕하세요).
아 떼이니 함자 음슴먼 오 아셔랏 디르함 하르샤(음슴먼 5개랑 10디르함 어치 하르샤 주세요).
오 쥬스 홉스. 므소스 라이헤브덱(그리고 홉스도 2개요. 소금 안 들어간 것으로 부탁드려요).
*홉스, 음슴먼, 하르샤는 빵의 종류이다.
*므소스는 소금과 설탕이 감미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쇼크란, 라이 아우넥(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것이 나의 즐거운 아침 루틴이다. 자주 하다 보니 입에 붙어서 이젠 자연스레 나온다. 동네 상인들도 내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준다.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중에 새롭게 배운 단어가 있으면 한번씩 써먹어 본다. '라이 아우넥(수고하세요)' 처럼 아주 일상적인 단어일지라도 외국인인 내가 말하면 모두가 놀라며 기뻐하는 것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서툴게나마 한국말을 하면 호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모로코에 도착했을 때에 비하여, 한달쯤 지난 지금은 가족들이 하는 대화의 절반 즈음은 알아들을 수 있게 발전해가고 있다. 언제쯤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목표는 1년 안에 초등 저학년 정도의 언어능력에 도달하는 것이다. 모로코를 떠나 여행하면서도 남편에게 부지런히 배워서 다음번 모로코에 다시 올 때는 영어 없이 가족들과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