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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즐거운 여행의 첫걸음

에콰도르- 키토

by 소울메이트

콜롬비아에서 한국인 여행자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국사람! 저 앞에 한국사람 발견!"

세명의 동양인 일행이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이 한국인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긴가 민가 싶어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흐음 진짜 모르겠다."

그분들이 거의 코앞으로 다가오실 때까지도 알쏭달쏭하다가 제일 앞에 걸어오던 여성분이,

"한국인이다..! 한국사람! 맞죠?!"

하고 반갑게 손을 흔드셨다.

"앗 맞아요 맞아! 우와 안녕하세요!!"

밖에서는 동양사람만 만나도 반가운데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마치 가족을 만난 기분이다. 정말 남편 말대로 한국분들이셨다니. 남편은 이제 한국인 외모 감별력이 나보다 나아졌다.

계단에 서서 나눈 5분 남짓한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는 안부도 묻고, 어떻게 여행하는지도 공유하고, 알찬 정보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기도 했다. 남미의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이동하는 우리와 반대로, 그분들은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로 올라오셨다고 했다.

"얼마 전에 에콰도르에서 버스에 불도 났대요. 다니실 때 조심하세요. 소지품도 잘 챙기시고요!"

에콰도르는 얼마 전까지 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도 꼽히는 곳이었는데 최근엔 갱단이 기승을 부리며 치안이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도 잘 다녔어요. 그리고 에콰도르 사람들 너~무 착해요."

버스에 불이 났다는 말에 헉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착하다는 말을 듣자 한숨 놓였다. 여지껏 경험한 바에 의하면 치안이 안좋은 도시는 어떻게든 바짝 긴장해서라도 다닐 수 있었지만, 정이 없는 도시에서는 아무리 깨끗하고 안전해도 다닐 의욕을 상실하곤 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프라 좋은 곳보다, 사람 좋은 곳이 최고다.


콜롬비아 국경도시 이피알레스의 성당


콜롬비아에서 걸어서 에콰도르로

칠 뒤.

이번 여행의 첫 도보로 넘는 국경.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사이 도착했다. 그저 그어 놓은 금 하나 넘는 것 뿐인데, 비행기도 버스도 아닌 두 발로 경계를 넘어가는 건 이상하게 짜릿했다. 출입국 심사를 거치고 밖으로 나와 두 나라 사이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렇게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일이 가능해지겠지.



에콰도르의 국경도시 툴칸에서 버스를 타고 키토로 이동했다. 콜롬비아만큼은 아니지만 에콰도르 역시 면적이 넓어 키토까지 서너시간을 버스로 달렸다. 이때만 해도 버스안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는데. 이후 페루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며 최장 4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보니 서너시간 타는 버스는 깐 눈 감았다 뜨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느낌이었다.

키토 도착!



키토에 도착했을 때 자동으로 나온 첫마디.

"와 여기 왜 이렇게 예뻐?"

키토에서는 달리는 트럭 위에 올라탄 마피아 집단이 총을 쏘아댄다는 괴담을 듣고 온 터라 다소 살벌한 풍경을 상상했건만. 웬걸, 지금까지 다닌 도시 중 손에 꼽히게 조경이 아름다웠다. 침 도착한 시간대가 잔잔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였던 덕에 도시의 낭만적 분위기가 극대화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들꽃을 닮은 색들로 채색된 건물들과, 네모진 돌들로 정성스레 포장된 도로, 역사 깊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주변 산의 풍경,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풀향기까지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당연히 자제야 한다. 어차피 오후 6시만 넘어가면 키토 대부분의 가게, 식당, 매점은 문을 닫기 시작한다. 그만큼 밤거리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호스텔 방향으로 걷는데 색소폰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죽자켓을 입고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빨간 스키니진에 선글라스까지 낀, 예사롭지 않은 착장의 연주자가 보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색소폰 케이스에 돈을 넣자 연주자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한손을 잡더니 핑그르르 돌리며 잠깐의 춤을 선물하셨다.

"여보도 해볼래? 내가 영상 찍어줄게."

"그럴까?"

남편의 제안에 나는 동전을 들고 케이스 앞으로 다가갔다. 돈을 넣기 전부터 아저씨는 두둠칫 리듬을 타며 다가오시더니 동전을 떨어뜨리자 마자 내 왼손을 잡아 한바퀴를 돌려 주셨다. 단 몇초의 춤이지만 그로 인해 행인으로 하여금 '나도 한번 추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아저씨의 똑똑한 마케팅 전략이 우리에게도 먹힌 것이다.

춤을 추고 나서는 고개까지 숙이며 "나마스테!" 하고 외치시는 아저씨 때문에 우리 둘 다 웃음이 터져 버렸다. 길을 가다 비아냥거리는 '니하오' 소리를 듣는 건 불쾌하기 그지 없지만, 이 색소폰 연주자의 '나마스테'는 비록 엉터리일지라도 그 태도에서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유쾌하게 넘길 수 있었다. 아래의 영상에서도 보이듯이 고개도 숙였다가 그 뒤엔 합장도 했다가 마지막의 나마스테까지, 아마도 그 때 이분의 머릿속에서는 최대한 동양적인 무언가를 떠올려보려는 찰나의 노력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귀여운 나마스테는 지금도 종종 떠오르곤 한다.


국경을 넘을 무렵부터 남편은 많이 아팠다. 원래 편도가 자주 붓곤 하는데 이번에도 편도염이 도진 것이다. 밤새 열이 나고 목소리도 깊숙이 잠겨버렸다. 그 때문에 에콰도르에서는 내내 맥을 못추고 대부분의 시간을 약먹고 숙소에서 쉬었다. 다행이었던 게 숙소가 지내기에 썩 괜찮았다. 우리의 숙소는 검색해서 나온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었기에 그저 위생만 나쁘지 않아도 감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깔끔할 뿐 아니라 운좋게도 방이 꼭대기 층의 모서리에 위치하여 기대에도 없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방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의 낮과 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 뜻하는 말이다. 그 이름처럼 키토에는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위도 0도의 장소가 있다. 뒤쪽에 서 있는 기념비를 배경으로 반구와 북반구를 나누는 노란 선 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남반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아파서 입맛이 뚝 떨어진 남편은 끼니를 거르고 나만 밥을 먹었다. '티그리요' 고 하여 잘게 다진 고기와 채소에 달걀과 치즈를 올린 에콰도르 음식이었다. 매콤한 살사와 섞어 맛있게 먹긴 했지만 남편 같이 먹질 못하니 영 재미가 없었다. 름시름 앓으면서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기 안쓰러웠다. 오늘은 이만 숙소에 들어가 쉬어야겠다.

들어가는 길 시장에 잠시 들러 라마 스웨터를 두벌 샀다. 앞으로 페루와 볼리비아 등지에서 요긴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었다.

티그리요


스웨터를 파시던 아주머니. 입고 계신 전통 의상이 고와서 찍어도 되는지 부탁드렸더니 허락해주셨다.






오후 6시 즈음 연보랏빛 하늘의 키토

키토 다음으로는 바뇨스라는 도시에 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폭포가 커서 물에 홀딱 젖을 수도 있다던데. 그때까지는 남편이 꼭 나았으면 좋겠다. 건강의 중요성 새삼 와닿는다. 그리고 옆에서 틈만 나면 나를 귀찮게 하던 남편의 장난과 참견이 여행 감초처럼 빠져선 안되는 것이었다는 깨닫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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