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카우치서핑 숙소에는 식구가 많았다. 나와 남편, 스페인에서 여행 온 '몬세(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호스팅해준 집주인 '조엘'과 그의 친구 '다니엘'까지. 다섯 명이 한집에 있으니 다섯배로 집안이 훈훈했다.
조엘은 베네수엘라 사람인데 베네수엘라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새 삶을 찾아 콜롬비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그는 카우치서핑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이었다. 베네수엘라 경제붕괴 당시 그는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돌렸고 그중 콜롬비아의 한 친구의 지원을 받아 보고타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바로 카우치서핑이 가진 선영향일 것이다.
몬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었고 지금은 콜롬비아 전역을 여행중이었다. 보고타는 그녀의 마지막 여행지이고 내일모레면 마드리드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처음 만났는데도 몬세는 엄청난 친화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와 남편이 여행 초반에 마드리드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왜 연락하지 않았냐며 아쉬워했다.
그녀는 자연친화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깨끗한 환경을 지키는 데에 관심이 많고, 각 나라가 가진 자연, 생태 등을 보고 배우기 위해 여행한다고 했다. 보고타에 오기 전에는 아마존에서만 2주 가까이 지내며 온갖 동식물을 보았다고 한다.
왼쪽부터 몬세, 나, 남편, 조엘
오늘 우리의 계획은 다같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벨리타스의 밤을 즐기는 것이다. '벨리타스'란 성탄절 전에 촛불을 밝히며 소원을 기도하는 콜롬비아의 행사이다. 거리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온 이웃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눈다.
저녁 메뉴는 남편과 내가 만든 토마토 스파게티와 감자달걀볶음이다. 우리가 음식을 하는 동안 조엘은 와인을 꺼내 준비해주었다. 거실의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접시를 놓아 상을 차리고 노트북으로 음악까지 틀어 놓으니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았다.
조엘의 주방에서
"우리 각자 자기 나라 말로 cheers할까?"
"좋아. 코리아부터 시작하자!"
"코리아에서는 '건배!'라고 하면 돼."
"오케이, 다같이 건배!"
그렇게 한국, 모로코, 스페인,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식으로 다섯번의 건배를 하며 잔을 부딪혔다. 네개의 다른 대륙, 다섯개의 다른 나라에서 모인 다섯가지 다른 목소리가 아름답게 섞였다.
각 나라의 언어로 건배!
몬세가 아마존에서 가져온 검 마체테를 시험 삼아(?) 휘둘러 보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본격 벨리타스를 보내러 밖으로 나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초를 켜고 있었다. 촛불의 온화한 불빛과 들뜬 사람들의 열기에 추위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도 소원의 초를 켤 시간이었다.
"다들 뭐라고 빌거야?"
"나는 평화."
"나는 건강."
"나는 돈 돈 돈!"
"나는 머미를 위해 기도할래."
조엘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머미'라는 이름의 한 고양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 갔더니 선천적 간질환 진단이 내려졌다고 한다. 조엘은 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머미에게 정성으로 약을 먹이고 물을 주면서 간병하는 중이었다.
우린 각자의 소원을 빌며 간절한 마음으로 초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기 시작한 초는 바람막이용으로 준비해 온 상자 안에 하나씩 세웠다. 나쁜일은 다 사라지고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생기길, 모두가 아프지 않길, 더 많이 웃을 수 있길. 이 수많은 소원들이 전부 이뤄지길 바라며.
왼쪽부터 남편, 조엘, 다니엘, 나, 몬세
초가 타오르는 동안 먹거리와 마실거리 나눔이 시작됐다. 한 이웃은 집에서 대량으로 만든 요리를 커다란 바가지에 담아와 나눠주고 다녔고, 어떤 이웃은 역시 직접 만들었다는 담금주를 나눠주었다. 십시일반이라고 조금씩 모인 음식이 모두의 한끼 식사가 되었다.
콜롬비아 사람들의 정
그리고 밤이 깊도록 끝나지 않는 춤파티가 열렸다.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오늘 처음 본 사람들도 다 함께. 신나게 흔들어 보자!
콜롬비아의 아기들은 걸음마를 떼는 순간부터 가족들과 춤을 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엘의 콜롬비안 친구 다니엘은 누구보다 춤선이 고왔다.
"와 너 춤 진짜 잘춘다. 어디서 배웠어?"
"하하 여기선 누구나 어려서부터 춤을 추니까. 아, 그리고 내 친구들이 댄서라서 같이 연습도 하곤 했어. 내 친구들은 K팝 댄스도 엄청 잘춰 하하."
나도 다니엘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보려 애썼지만 삐그덕 거리는 몸은 따라주질 않는다.
뭐 어떤가. 재밌으면 됐지.
그렇게 얼마나 놀았는지도 언제 집에 들어갔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이불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던 것만 기억난다. 멋진 벨리타스의 밤이었다.
다음날, 어제 별로 많이 마신 것 같지 않은데 과일주를 마셔서인지 다들 숙취가 있어서 비틀비틀 아침 해장을 하러 나갔다. 한국이었다면 콩나물국밥 한그릇 시원하게 들이킬텐데, 여기선 어떻게 해장을 해야 하나.
"따끈한 수프같은 거 먹고 싶다."
"오 그럼 '창과'를 시키면 되겠다."
"창과? 그게 뭐야?"
"콜롬비아에서 자주 먹는 수프야. 아주 맛있어. 계란도 들어가."
다니엘은 창과라는 수프를 강력히 추천했다. 자기도 아침밥으로 자주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만드는 방법을 들어보니 아주 쉬웠다. 우유를 다진마늘, 잘게 썬 파와 함께 끓이다가 계란, 치즈, 소금 약간만 넣어서 좀더 끓이면 완성이다. 말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아서 바로 주문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음식은 안먹으면 손해다.
곧 주문한 창과가 나왔다. 한숟갈 떠서 입에 넣었더니 부드러운 우유가 식도로 내려가며 몸이 따뜻해진다.
"음~ 맛있어!"
파와 마늘향이 치즈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계속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한그릇을 다 비우자 더부룩했던 뱃속도 가라앉았다. 콜롬비아에서 해장이 필요한 때가 온다면 창과를 드셔보시길 바란다.
이밖에도 콜롬비아 음식을 몇가지 더 시켜서 먹었는데 모두 맛이 좋았다. '타말'이라고 바나나잎 안에 고기, 야채 등을 넣어 쪄낸 음식, '아베나'라는 달콤한 쌀음료, '보뇨엘로'라는 치즈 볼 등등.
창과
아베나
타말
음식점의 귀여운 꼬마 사장님과 함께. 어린 아이가 부모님의 식당일을 돕는 게 참 기특했다. 얼마나 똘똘했는지 모른다.
아침식사 후 다니엘은 가족과 점심식사 모임이 있어 집에 갔고, 조엘은 아픈 고양이 머미를 살피러 집으로, 몬세는 친구를 만나러 번화가로, 나와 남편은 시장을 구경하러 각자 흩어졌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을까.
오후 4시 즈음 조엘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머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조엘의 집에는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거실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조엘의 흐느낌만이 침묵 사이로 새어나왔다.소파 위에는 담요로 감싼 머미가 누워있었다.
연락을 받은 다니엘과 몬세도 곧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가 없어 아무말 없이 조엘의 울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옆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아주 아기였을 때 길에서 떨고 있는 걸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한 게 머미와의 첫만남이었어.. 나는 머미를 정말 사랑했어.. 그렇게 4년을 같이 살았는데.."
불과 어제 벨리타스에서 머미의 건강을 기도했는데 하루도 안되어 머미와 이별을 하게 되다니. 조엘은 물론이고 우리도 큰 상실감에 빠졌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머미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었다. 조엘은 머미의 몸을 수목장과 비슷하게 묻어주는 업체에 보냈다. 머미가 묻힌 흙으로 몇 주 동안 묘목을 키워 화분에 담아 조엘에게 다시 보내주는 장례 방식이었다. 어린 나무를 볼 때마다 조엘은 머미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머미가 회복하길 바랐던 우리의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엘은 추운 길바닥에서 굶주린 아기 머미를 구해 집으로 데려온 날부터 아픈 머미를 보내주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4년이라는 시간을 조엘과 보내면서 머미는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밝혔던 벨리타스의 촛불은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