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송크란 축제(치앙마이)
치앙마이는 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한달살기와 같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직접 가보니 그 이유를 알만 했던 것이, 고층 빌딩 없이 아담한 건물들로 탁 트인 경관, 고즈넉한 골목길, 도시를 감싸고돌며 더위를 식혀주는 해자, 그 주변으로 파릇파릇한 가로수길까지 누구라도 길게 머물고 싶어질 것 같은 곳이었다.
이토록 조용한 치앙마이에서도 송크란 기간에는 모두가 길에 나와 시끌벅적 물놀이 한바탕이 열린다. 물 맞는 것만큼이나 독창적으로 꾸미고 나온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준비를 하고 축제에 임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편한 복장에 작은 물총 하나만 손에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서면 된다. 아니 혹시 빈손이라 하더라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 걸어가다 만나는 누구든지 웃으며 물을 뿌리기 시작할 것이고 낯선 행인은 금세 녹아들듯 물놀이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물놀이와 함께 다양한 퍼레이드도 진행된다. 전통옷을 갖춰 입고서 다소곳하게 춤을 추고, 색색의 꽃으로 장식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치앙마이와 그 인근의 여러 사원들에서 각자 부처상을 모셔와 행진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새해의 복을 기원하며 행렬에게 물을 뿌리기도 한다. 이날만큼은 행렬 속의 부처상에도 물을 뿌리는 것이 허용된다.
치앙마이의 송크란은 그 규모가 다르다. 물총이나 바가지를 이용한 물놀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길에다 대형 스프링클러 구조물을 설치하여 지나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샤워가 된다. 졸졸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를 걸어가면 상쾌함에 저절로 춤이 나온다. 그 누구도 눈치 보지 않고 낯선 이와 함께 춤추고 함성을 지르며 어울린다. 설치된 무대에 오른 음악밴드들의 공연이 타오른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다.
송크란이 되면 절은 성스러운 기도의 공간인 동시에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절 앞의 어린 스님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웃으며 물총을 쏜다. 절 안의 뜰에는 푸드코트와 각종 문화체험 공간이 조성되고, 한쪽에는 무대와 관중석이 마련되어 신자들과 방문객들이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다. 오늘은 절 안에 불경이 아니라 밴드음악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내리쬐는 햇볕에 정수리가 이글거렸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다 보면 문득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 몸을 발견하게 된다. 치앙마이의 송크란은 풍요로운 물공급 속에서 오래도록 놀 수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해자에서 퍼올린 강물을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데다 공공급수시설까지 곳곳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서로의 얼굴에 진흙을 발라주는 사람들도 보인다. 작은 바가지에 하얀 진흙을 들고 다니며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다가가 얼굴에 살포시 발라주기도 한다. 이 역시 물을 뿌리는 것과 비슷하게 액운을 쫓고 새해의 다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머드를 파는 포장마차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직접 만들어 발라보아도 좋고, 그게 아니면 동네만 한 바퀴 쓱 돌아도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가와 발라주어 얼굴에 하얀 머드칠을 할 수 있다.
돌아다니다 지치면 잠시 해자 옆 풀밭에 앉아 다리를 쉰다. 쉬면서 물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데 나도 같이 뛰어들고 싶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들어가 수영을 했다. 찬물을 잔뜩 맞아서 추웠던 참에 해자 안의 물이 미지근하여 오히려 몸을 녹여주었다. 그 옆의 커다랗게 가지를 드리운 아름드리나무는 동네 아이들의 멋진 다이빙대가 되어준다. 나무를 맨손으로 타고 올라간 아이들은 가지 끝에서 물로 퐁당퐁당 뛰어들며 논다.
송크란 기간에는 아무리 날이 더워도 빙수보다는 따끈한 똠얌 국물이 더 당길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물에 젖어 으슬으슬한 몸을 덥히기엔 개운한 탕이나 국수가 제격이니 말이다. 팔팔 끓인 똠얌을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 후루룩 마시면 으허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음식을 먹으며 몸을 녹이면서 남들의 물총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하루 정도는 축제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도시 안팎의 아름다운 태국식 사원들도 둘러보고, 근교의 다른 마을을 방문하여도 좋다. 우리도 바이크를 빌려 매 캄퐁이라는 1시간가량 떨어진 마을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울창한 수풀 사이에 자리 잡은 올드타운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치앙마이 시내로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물을 장전한 채 도로를 메우고 있다. 도로 위에서까지 물놀이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요리조리 바이크를 달려보지만 젖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시내로 들어선 지 십여 분 만에 몸은 완벽히 젖고 얼굴은 다시 진흙으로 곱게 칠해진다. 가끔 진저리 쳐지게 차가운 물을 맞고 돌고래 고함을 내지르기도 한다.
차들과 바이크들은 전후좌우로 엉켜 다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움직인다. 살면서 처음 보는, 물놀이로 인한 교통체증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빨리 지나가겠다고 조급해하거나 성화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고, 다만 물을 끼얹고 또 물을 맞으며 이 순간을 누리는 이들만이 있다. 가장 시원하게, 그리고 가장 뜨겁게 새해를 맞이하는 법. 그건 아마 송크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