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제국의 찬란한 역사,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씨엠립

by 소울메이트

캄보디아는 방콕에서 육로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약 4시간을 달려 태국-캄보디아 간 국경을 넘고 거기서부터 3시간이 좀 못되게 버스를 타면 씨엠립이다. 캄보디아에 입국하여 씨엠립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국경 주변의 버스회사들을 몇 군데 찾아다니던 중 길가에 서있는 흰색 밴을 보았다.

"혹시 저것도 씨엠립 가는 미니버스 아닌가? 가서 확인해 볼까?"

"좋아, 한번 물어보자."

밴 안에서 마침 기사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씨엠립에 가시는지 여쭤보니 그렇다고 한다.

"오! 얼마예요?"

"음.. 한분 당 10달러 주시면 되겠네요."

이게 웬 떡이냐. 10달러면 버스보다 싸다. 거기다 기사님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시는 길이었는지 승객도 우리뿐이어서 의자를 뒤로 끝까지 젖히고 한숨 푹 자며 갈 수 있었다.

기사님이 주신 간식. 잡곡밥 위에 건어물 조림같은 게 올려진 간식이었는데 정체는 모르나 맛있게 먹었다.


상상 속 씨엠립의 풍경은 드넓은 앙코르와 유적과 그를 둘러싼 풀과 늪 그 자체였다. 그런데 씨엠립의 중심은 여느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밤이면 방콕 부럽지 않게 번화한 먹자골목이 형성되고 위를 피해 시원한 맥주를 즐기거나 카페에 앉아 밀크티와 레몬티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엔 버스킹하는 연주자들과 옷이나 수공예품을 파는 상인들이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되면 수십개의 등불이 비쳐 황홀하게 빛나던 엠립의 강가를 걸었다. 언뜻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등을 물 위에 띄워두었나 하고 착각하게 된다.

보디아의 음식은 태국과 비슷한 듯 달랐는데, 코넛 향이 나는 카레에 생선을 섞어 주는 '아목(amok)'이라는 음식이 독특하여 기억에 남는다. 대체로 모든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하루는 뷔페에 가서 수산물과 고기를 마음껏 먹기도 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씨엠립


후추맛이 강한 소스가 맛있었던 소고기로 만든 lok lak이란 음식(좌)과 부드러운 식감의 생선 amok(우)


밤이면 열리는 노점


씨엠립을 흐르는 강


먹자골목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도와 고사리손으로 씩씩하게 팔찌를 만드는 소년에게서 우리도 팔찌 하나를 샀다.


캄보디아의 대표 맥주 앙코르. 사원이 그려진 맥주는 처음이라 재미있다.


인도의 아그라에 가는 것이 타지마할을 보기 위함이라면 씨엠립에 가는 이유는 당연히 앙코르와트 방문 것이다.징어도 바짝 구워질 것만 같은 땡볕 더위에 땀이 말 그대로 비오듯 쏟아지는 날, 금방이라도 그만두고 에어컨이 틀어진 방 안으로 피신하고픈 충동이 드는 그런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옛 장인의 손길이 새겨진 앙코르와트 유적의 석조는 우리가 쉽사리 발을 돌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더워 입술이 바싹 말랐지만 정수리에 물을 끼얹어가면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애썼다.

앙코르와트 입구의 친절하신 안내원 아저씨


크메르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힌두교 사원이자, 불교를 숭상하게 된 이후에는 불교 사원으로서 자리를 지킨 앙코르와트를 걷는다.

21세기의 기술로도 어려워보이는 사원을 12세기에 지어낸 메르제국의 건축가들과 석공들을 비롯한 수많은 기술자들. 천년 전 그들은 어떤 손으로, 어떤 도구들로, 어떤 마음으로 이 위대한 건물을 세웠을까. 무리 왕의 명으로 지어진 사원이라지만 웬만한 신앙이 아니고서는 완성될 수 없는 경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둥에 새겨진 신화속 인물들의 표정 하나, 옷자락의 주름 하나, 작은 장신구 하나에도 정성이란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만든이의 영혼이 고스란히 이 석조에 박제되어 천년을 살아 숨쉬고 있는 것만 같다. 생 종교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곳에 온다면 믿음이 가진 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월에 닳고 비바람에 삭아 무너져내린 사원은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인해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아직까지 꼿꼿이 그 무게를 버티며 남아있는 부분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화되어 뭉툭해진 돌탑의 모서리와 요철이 희미해진 조각들이 천년 전에는 얼마나 더 예리하고 또렷했을지를 상상해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앙코르와트는 한폭의 그림이다.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사원을 거니는 사람들


세개의 큰 돌탑이 서 있는 정문에 도달할 즈음에는 이미 입고 있는 셔츠가 물에 빠졌다 나온 듯 축축해져버렸지만 이런 극한의 폭염도 깜빡 잊게 만드는 앙코르와트였다. 웅장한 정문을 통과하여 기와 대신 돌을 직접 올려 만든 지붕 아래의 통로를 걸었다. 조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우르르 쏟아질 듯한 수백 수천개의 바윗덩이들이 천장에 서로 맞물려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통로 끝으로 나가면 초원 위에 선 돌탑이 나온다. 촘촘하고 가파른 돌계단이 탑의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탑은 기도를 드리러 온 신자들에 한해 입이 허용다. 곳곳에 균열이 생긴 계단이 더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막고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원을 정비하는 작업 역시 진행중인데 우리나라의 국가유산청이 협력하고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어 자랑스러웠다. 로의 것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서로의 소중한 것을 함께 지키는 데에 항상 앞장서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앙코르와트의 정면


신의 형상을 한 석상의 천을 조심스레 새것으로 바꾸어 둘러주는 신자들.





검은 이끼에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사원은 마치 할아버지의 주름 패인 손처럼 어린 동자승들을 품에 안고 있다.


탑의 입구로 이어지는 돌계단. 기도를 드리려면 일단 저걸 다 오를 힘이 있어야 한다.


앙코르와트의 보수작업을 함께하는 우리나라


층계 하나도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산스크리트어로 '앙코르'는 도읍 또는 수도를,'와트'는 사원을 뜻하여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앙코르와트는 사원이자 당시 크메르제국의 도 그 자체였으며, 오늘날 캄보디아의 국기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아 이 나라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앙코르와트라 하면 떠올리는 세개의 돌탑 말고도 이 방대한 유적 안에는 수많은 사원들이 산재한다. 다 보려면 몇날 며칠이 필요하고 더군다나 이 더위 속에서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전부 보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당장 그늘진 실내로 뛰쳐들어가고픈 본능이 점점 커질 때즈음 '타 프롬 사원'에 도착했다. 남은 수분마저 빼앗겨 말랭이가 되어버릴 것 같은 괴로움을 꾹 참고 급한대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목을 축이고 나서 들어선 타 프롬 사원은 이보다 더한 불더위라도 참아가며 방문할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







사원을 뚫고 자라나는 나무로 유명한 타 프롬


힌두교의 신들 중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의 조상이라는 뜻을 가진 '타 프롬'은 크메르제국의 또 다른 왕이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원이다. 여러개의 커다란 나무가 사원 위에 그대로 뿌리내린 모습이 기이하기도, 아름답기도, 조금 무섭기도 하다. 나무는 길고 긴 시간 조금씩 건물을 비집고 들어가 마침내 일체가 되었다. 나무에 양분을 내어준 사원이 스스로는 힘을 잃고 허물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찌보면 사원이 나무에 파릇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키워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을 나무가 점차 사원을 뒤덮고 집채만하게 자라기까지 그 시간의 흐름이 적나라하게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앙코르와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무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건물들이 숲속의 폐허처럼 보이다가도,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자연 속에 오묘하게 녹아든 바로 그 모습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완전해보이기도 한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동료 스님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어느 동자스님들에게 사진을 부탁드렸다. 아이같은 천진함은 잠시 얼굴에서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찍어주셨다.

앙코르와트가 이토록 크다는 걸 체감해 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였지만, 날씨에 져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유적지 방문에는 그 시기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함을 깨달은 하루였다. 우리가 본 곳은 유적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의 상징이 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국기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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