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태국- 방콕, 후아힌, 푸켓

by 소울메이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년이 짧다하고 쉼없이 여정을 재촉해 온 우리에게 잠깐 쉼표를 찍어갈 시간이 있었다. 싱가폴에 사는 편 친구 '아드난'네 가족과 태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3년 전 우리가 싱가폴에 방문했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아드난의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항상 맘속에 있었다. 이번 기회에 얼굴도 보고 그동안 많이 컸을 딸아이도 놀아주면서 께 추억을 쌓고 싶었다.


아드난네 부부가 직장에서 휴가를 내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캄보디아에서 막 돌아온 우리는 그동안 태국에서 중국비자 발급을 마쳤고, 친구 부부가 올 때까지 한가한 해변마을에서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아힌 해변

태국에서 휴양섬으로 유명한 코사무이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후아힌이라는 해변도시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방콕에서 가까운 후아힌으로 정했다.


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고 일어나서 슬리퍼를 끌며 숙소 앞 시장에 가서 닭가슴살밥이나 게살볶음밥 같이 간단한 아점을 먹는다. 다 먹고 나선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1.5km 떨어진 해변에 걸어간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신다. 날은 화창한데 바람은 또 세서 파도가 높게 일렁이자 서퍼들이 하나둘씩 보드를 들고 나와 파도를 가른다. 수영하고 서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우리도 못참고 파란 바닷물에 몸을 담근다. 바다에서 나와 카페에 돌아올 때쯤엔 배가 다시 살살 고파져 뭐 먹을 게 없나 메뉴판을 뒤적인다. 나폴리 피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다른 메뉴보다 좀 가격대가 있다. 여행 초반 같았으면 망설였겠지만 여행의 끝무렵이 다가오자 씀씀이가 커진다. '에이 이왕에 쉬러 왔는데 먹고 싶은 거 아끼지 말고 먹자' 하고선 피자 한판을 시켜 둘이 맛있게 나눠 먹는다. 그리고 해가 수평선에 가까워질 때즈음 다시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후아힌에서의 5일 동안 한 것이라곤 이게 전부다. 먹고, 자고, 수영하고, 밤엔 야시장에 군것질하러 나간 것 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텅 빌 수도 있구나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자 몸속은 오히려 에너지로 가득 채워졌다. 장한 마음이었던 약 1년 전 여행의 첫날. 그날 이후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아 헤맸니 이젠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었다. 무 나른해서도 재미가 없겠지만 너무 꽉 조이기만 도 재미가 없다. 진과 휴식을 적당히 섞는 게 장기여행이란 마라톤을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바람이 잘 들던 바닷가의 카페


가끔은 그냥 앉아서 밤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후아힌에서 발견한 튀김맛집을 소개한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비롯하여 여러 과일을 튀겨 파는데 그 식감이 독특하고 바삭한 튀김옷 속 따끈한 과일이 의외로 맛있다. 개인적으로 으깬 바나나를 길쭉한 모양으로 뭉쳐 코코넛가루를 뿌려 튀긴 게 가장 맛있었고, 조그마한 찹쌀떡을 튀긴 것도 맛있었다.

후아힌 방문객들에게 추천하고픈 길거리 튀김


아드난네 가족을 만나는 날이 다가왔다. 푸켓에서 만나기로 하여 푸켓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후아힌에서 방콕으로 와 하루를 머물렀다. 콕은 오고 또 와도 질리지 않는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어딜가나 다양한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려나. 꼭 유명한 야시장에 가지 않아도 집밖으로 한두 블럭만 걸으면 웬만한 먹거리가 다 있는 이곳. 도시 전체, 아니 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커다란 먹자골목 같다. 건너로 아룬이 보이는 선착장에서 석양을 맞이할 때까지 시장 구경을 하며 군것질로 배를 채웠다.

해지는 왓 아룬


야경

버스에 타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태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도락로 태국을 따라올 나라가 몇이나 되려나."

"글쎄. 거의 없지 않을까? 먹거리로는 정말 최고지."

"맞아. 태국사람들은 음식에 정말 진심인 것 같아."

그 때 버스에 올라탄 한 승객이 우리 앞의 빈 좌석에 앉았다. 그 뒷모습을 보고 우리는 숨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다.

'Think of Food. Think of Foodland.'

태국음식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때 마침 이런 글귀가 앞자리 승객의 셔츠 뒤에 적혀 있을 줄이야. 태국은 Thailand 이지만 Foodland 라는 별칭을 가져도 어울릴 것 같다.


푸켓에서 다시 만난 아드난네 세 식구는 3년 전럼 여전히 밝고 친절하면서도 그때보다 무언가 더 안정되고 단란해보였다. 사랑스러운 가족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무럭무럭 자라 7살이 된 딸아이 자이나는 아직 유치원생인데도 키가 훌쩍 크고 옛날과 달리 다소곳해졌다.

"자이나. 삼촌이랑 이모 기억나? 예전에 우리 봤었잖아."

"(끄덕끄덕)"

"하하, 자이나 많이 컸구나. 예전만큼 말을 많이 안하네."

그랬던 아이는 불과 몇시간 만에 조잘대던 옛날 모습으로 돌아 같이 수영을 하자며, 모래성을 쌓자며 손을 잡아 끌었다.

"저는 처음에는 말을 잘 안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많이 해요." 라면서 새같은 입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게 너무 귀엽다.

아빠와 함께 수영하는 자이나


카말라비치는 푸켓의 번화가에 위치한 바통비치보다 훨씬 조용하고 깨끗하다. 한적한 해변과 맑은 바다와 근처의 멋진 숙소들은 우리가 꿈꿔온 이상적인 휴양지의 모습이다. 번씩 비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그 덕에 너무 덥지만은 않아 좋았고, 비온 뒤의 출렁이는 바다와 그 위 하늘에 파도처럼 넘실대는 듯한 모양의 구름은 탄을 자아냈다.




우리는 그동안 쌓인 포를 맘껏 풀었다. 늦게까지 보드게임을 하고, 밤거리를 걷고, 먹을 거리를 잔뜩 사서 나눠 먹었다. 자이나는 우리와 지내는 동안 수영장에서 같이 놀면서 서툴지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리에게 그랬듯 아드난과 그 가족에게도 좋은 시간이었길 바란다.


아드난네는 우리보다 하루 일찍 푸켓을 떠났다. 우리도 다음날 태국을 떠날 채비를 했다. 집을 떠나온 지 1년이 되기까지 약 한달 남긴 시점에서 귀국 전 행선지를 홍콩과 중국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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