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 호숫가 마을의 삶

캄보디아- 씨엠립

by 소울메이트

"해 지기 전에 데려가 줄 곳이 있어."

남편은 가끔 내가 모르게 지도에 어딘가를 저장해놓았다가 불시에 나를 데려가곤 했다. 그렇게 가는 곳들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뒤엎는 장소들이었기에 이번에도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되었다.

씨엠립의 중심에서 삼사십분 바이크를 달리자 붉고 고운 흙의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똔레삽 호수로 가는 길이었다.

똔레삽 호수 가는 길의 마을


"짠. 이곳이야."

똔레삽 호수.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이자 풍부한 수산물이 나는 이 호수는 캄보디아 국민들의 생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호숫가에는 수상가옥으로 가득한 어촌이 형성되어 있어 흔히 보기 어려운 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호숫물 위로 단을 높여 위에 기둥과 마루를 올리고 지붕을 덮어 만든 집들 수십채가 좁은 틈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해 있다. 가옥들 간의 좁은 통로로는 기다란 풀잎을 접어 만든 배처럼 길고 날렵한 모양의 배들이 지나다니거나 정박되어 있다.



자그맣고 키가 작은 가옥들은 얼기설기 지은 듯 보여도, 물위에서 삭지 않는 기둥과 대가족의 식구들을 탄탄히 받쳐주는 마룻바닥과 낭만을 더해주는 꽃화분까지 놓인 멋진 보금자리이다. 그 사이를 아이들이 맨발로 물을 찰박이며 뛰어다니고, 처마에 걸린 빨랫줄에는 크고작은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말라가고, 작지만 수년간 가족의 먹거리와 벌이를 책임져왔을 든든한 배들이 그 옆에 둥실 떠있다. 나도 그중 한 배 위에 살포시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본다.


호수쪽으로 좀더 들어가는 길에 한쪽에 차량 여러대가 주차되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주욱 이어진 길은 온 마을의 사람들이 다 모인 듯, 먹거리와 장난감을 파는 분들, 놀러나온 가족들, 한무리의 청소년들, 공연을 위해서 설치된 무대 주변에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쪽엔 물총을 든 몇몇 사람들이 서로 물을 쏘며 놀고있다. 송크란 기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그 여운을 즐기는 사람들인가 보다. 마침 주말이라 마을 축제가 열린 모양이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속을 바이크로 요리조리 피해 달려 주차장에 바이크를 대려고 하는데 주차요원분이 다가오신다.

"여기 대시려면 주차비 내셔야 해요."

주차티켓을 우리에게 주시며 말씀하신다. 사실 큰돈은 아니지만 말씀이나 드려볼까 해서 우리는 "저희 정말 10분 정도만 둘러보고 나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랬더니 너무 쉽게도 "아, 그럼 오케이. 들어가세요. 원랜 안되는데 그냥 바이크 타고 들어가셔요!" 하시는 게 아닌가.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금방 나올게요." 걸어가려면 꽤 걸리는 거리에 날까지 더웠던 터라 이러한 주차요원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씨엠립 곳곳에서 모두들 놀러나왔나 보다.


"나 조금 출출해. 저기 옥수수 하나 사먹을까?"

"나는 괜찮아. 여보 가서 사먹고 와."

내가 구운 초당옥수수를 사러 간 사이 남편은 바이크 옆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옥수수를 사와서 나도 같이 보려고 빼꼼 들여다보니 귀여운 도박판이 벌려지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주사위가 던져질 때마다 사람들은 기쁨이나 아쉬움으로 환호하며 판돈을 챙기거나 내놓았다. 어른부터 대여섯살 아이까지 꼬깃한 지폐를 걸고 다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도박이 이리도 순박할 수 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저녁이 되면 격투기 시합을 열려는지 링도 설치되어 있었다.



똔레삽 호숫가로 가까이 가기 위해 곧 축제의 장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아까 그 주차요원을 다시 마주쳤다. 고마움에 바이크 위에서 크게 손을 흔들었더니 우리에게 인사 대신 씨익 미소를 날려주셨다.

거기서 울퉁불퉁하고 풀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숲길을 좀더 달리자 드디어 호수가 펼쳐졌다. 파도와 소금기만 없을 뿐 바다라 해도 믿길 정도로 끝이 없는 물이었다. 주민들의 수원으로도 쓰일 호수에 쓰레기가 많아 위생이 걱정되어 그 부분은 관리가 필요해보였다.


호수 옆은 나무가 울창한 그늘로 돗자리를 펴놓고 소풍을 하기 제격이었다. 주민들은 가족끼리 이웃사촌끼리 돗자리 위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휴대용 버너에 요리를 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더위를 식힌다. 한 가족은 마이크까지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캄보디아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절망이나 근심보다는 끈끈한 가족애와 활기가 느껴진다.

몸보다도 마음의 병이 더 많아지는 시대이다. 발달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경쟁과 남과의 비교속에 지쳐 우울과 자조에 빠지곤 한다. 서울의 화려한 도심 고층빌딩의 거주자, 똔레삽 호숫가에서 얼음 띄운 맥주잔을 부딪히며 노래하는 가족. 누가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갈까를 잠시 생각했다.


호수를 보고 나오는 길. 이제 어부들도 퇴근길인지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배들이 보인다. 어부가 젓는 노에 호숫물에 비친 노을이 반짝하고 빛나며 부서진다. 엄마는 앞에서 노를 젓고 아빠는 뒤에서 모터로 길을 잡아주며 떠가는 배 위에 아이가 동그란 눈을 굴리며 앉아있다. 다들 저녁상에 올릴 생선을 많이 잡아왔을까.



"오늘 어땠어?"

"너무 좋았어. 캄보디아를 더 가까이서 본 것 같아서."

문득 이곳 사람들은 똔레삽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면처럼 둥글둥글하고 잔잔한 성품. 호수에 반사된 햇살같은 미소. 언제라도 물고기를 베풀어주는 호수처럼 가진 걸 욕심없이 나누는 여유. 호숫가의 우거진 수풀처럼 서로 어우러져 기대어 살아가는 삶 같은 것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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