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엄마와 아빠의 결혼식날 온 가족이 찍었던 기념사진을 오래된 앨범에서 본 적이 있다. 사진 한구석에는 입이 댓발나와서 뾰루퉁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대여섯살 가량의 남자아이가 있었고, 그게 바로 오늘 결혼한 사촌오빠다. 오빠가 그 날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는 엄마가 아빠에게 시집을 가서라고 했다. 오빠는 우리 엄마를 무척 좋아했다는데 외삼촌한테 시집을 가버린다고 하니 슬플 수 밖에. 그랬던 꼬마가 어느새 다 커서 장가를 간다.
특별한 날을 맞아 하늘하늘한 한복을 입고 선녀처럼 곱게 꾸민 엄마와 고모들은 신랑신부 못지않게 시선을 끌었다.큰고모는 흰저고리에 연한 옥빛 치마, 둘째고모는 하늘색 저고리에 진파랑 치마, 막내고모는 주홍빛 저고리에 갈색 치마, 엄마는 청록색 저고리에 연보랏빛 치마..오색찬란하면서도 단아한 색감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어졌다.
결혼식 후 집에 돌아와 대여한 한복을 돌려드리려 한복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한복점은 이미 문을 닫아서 다음 주 월요일에 반납을 해야할 것 같다.
엄마>> 돌려주기 전에 너도 입어볼래?
오예쓰 함도릴라.
헤헤헷 신난다
예쁜 한복에 들떠서 방방뛰는 딸내미 사진을 찍어주느라 엄마가 고생 좀 하셨다.
엄마>> 아이고 바보같은 표정 고만하고 가만 좀 있어봐.
가만 있으라고 하면 더 날뛰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딸내미
내친 김에 고모의 한복도 입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쪽빛. 치맛자락에 작은 나비들이 팔랑거린다. 춘향이가 아니라 향단이 같다는 엄마 말에 심통부리는 못난 향단이(우측).
엄마의 노력 끝에 건진 베스트샷
옷이 날개라고 한복을 입으니 그래도 좀 때깔이 난다.
붑커랑 결혼식 올릴 때도 한복을 입어볼까.
붑커와 나는 한국에서 한 번, 모로코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한국에서는 가족끼리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 이 때 커플 한복을 입으면 보기에도 예쁘고 붑커에게 뜻깊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모로코에서 결혼을 할 때도 한복을 가져가서 입으면 현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멋을 자랑스레 보여줄 수도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로코의 결혼식에서 신부는 여러 벌의 드레스를 갈아입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한복으로 입고 싶다.
"부부가 되는 건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나의 기준에 배우자를 맞추려고만 하거나 배우자로부터 받기만 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상대에게 내가 더 많이 베풀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이는 저의 40년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저 스스로에게 하는 잔소리이기도 합니다."
덕담을 들으면서 오빠가 참 좋은 집에 장가를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저 말씀을 따라 살고 싶다.
붑커와 나는 다른 문화권에서 30년을 자라왔기에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려는 노력이 몇 배로 더 필요할 것임을 알고 있다. 때로는 마찰도 있을 것이고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적의 다름이 오히려 우리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결혼생활을 더 풍요롭게 해 주기도 할 것이라 믿는다. 두 사람이 상대방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며, 문화의 차이로 인해 끝없이 생겨날 서로에 대한 의문을 항상 배우는 자세로 풀어 나간다면 말이다. 각자의 전통 의상과 결혼문화를 공유하는 것도 그 작은 걸음걸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여담]
히잡은 모로코 뿐 아니라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전통 의상이다.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나라도 있지만 모로코에서는 모스크에 갈 때만 빼면 반드시 히잡을 쓰지는 않아도 된다.
난 개인적으로 히잡 쓰는 걸 좋아한다. 히잡은 이목구비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얼굴이 조금 작아보이는 효과도 있다..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