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

신혼여행기 #14

by 소울메이트

발리가 몰디브와 괌을 제치고 신혼여행지 1위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았다. 괌은 가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깨끗한 바다와 해양 스포츠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몰디브와 비교하여도 발리가 더 인기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휴양지인 동시에 지루하지 않고 좀 더 활기 넘치는 곳이라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다, 평야, 언덕, 절벽, 호수, 화산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거니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번화가에서 현지인들의 삶에 녹아들어 볼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특유의 바이크 전용 길.

리에서는 사람 한두명 겨우 지나가게 생긴 길들을 건물 사이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바이크 전용 길인데 너무 좁아 지나갈 수나 있을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바이크 두대가 마주쳐 지나갈 수도 있다. 담벼락에 팔꿈치가 닿을락 말락 하며, 나뭇가지에 머리카락이 스칠락 말락 하며 바이크를 달리면 '아 내가 인도네시아에 와 있나'하고 가슴이 벅찬다.


발리를 여행하며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어딜가더라도 비용에 비해 만족스러운 양질의 서비스와 훌륭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발리가 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여행지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곳이 다시 찾고 싶어지는 여행지인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부유한 현지 주민들 덕이지 않을까. 한번은 그저 우연히 한 골목을 따라 들어갔다가 눈부신 산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사유지처럼 보였다. 그 때 주인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아주셨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발리 스윙을 타는 곳이에요."

발리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발리 스윙은 관광객들이 숲이나 바다를 배경으로 그네에 올라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설치한 대형 그네이다. 우리는 스윙을 탈 생각은 없었고 사진만 찍고 싶어서 잠시 망설였다. 그랬더니,

"커피나 차를 주문하시면 스윙은 아니어도 몇 군데의 포토 스팟에서 사진을 찍으실 수 있어요. 하지만 굳이 주문하지 않으셔도 돼요. 맘껏 머물다가 가세요."

라며 자리를 비켜주시는 게 아닌가. 친절한 그 분의 태도와 미소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우리는 커피 두 잔을 주문했고 멋진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비록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날 받은 호의는 빼어났던 풍경만큼이나 인상깊게 뇌리에 남았다.




울창한 수풀과 푸른 농경지가 있는 우붓은 발리에서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논 옆에서 순풍을 맞으면서 하는 아침식사가 이 곳에선 예일이다. 평소에는 이런 자연을 찾으려면 하루 날잡아 교외로 가야만 했는데. 여기서는 발 닿는 곳마다 녹음이니 사치를 누는 기분이었다.


산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오르막을, 나무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그늘을 준다. 자연 안에서는 두가 평등해서 서로 조급하게 경쟁을 할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오롯이 자신의 맘속 깊은 곳에 집중하고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에서 찍은 사진 속의 우리는 화려한 옷이나 메이크업 없이도 얼굴이 환하게 빛나 보인다. 외양을 가꿔서 잘생겨지는 것과는 다르다. 내면에 양분을 주면 이목구비가 부드러워지고 인상 자체가 바뀐다.

산등성이의 구름은 나무들이 목마르지 않게 이슬을 뿌려주고 간다.
우붓의 몽환적인 밤하늘.
수많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산소를 마시면서 수영하기.
고요한 숲에 앉아있다 보면 밤새도록 조곤조곤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하얗기만 했던 피부가 인도네시아의 따스한 태양 아래 건강한 갈색으로 익어갈수록 동반자와의 사이도 끈끈하게 무르익어감을 느낀다. 둘의 웃는 모습이 여행 첫머리에서보다 지금 더 닮아 보인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지금은 바이크를 운전할 때 남편은 나의 손발이 되고 나는 길잡이가 된다. 때론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이 커피가 필요한지 물이 필요한지 알아차리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대화하다가 "방금 나도 똑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 일도 잦아졌다.


남은 여정은 우리를 또 얼마나 자라게 할지. 얼마나 서로를 더 이해하게 만들어줄지 기대하며 우리는 발리의 북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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