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건가요
나, 여기 살아야겠어.
우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4주내내 감포에서 먹고 자고 일했다. 시간도 없을 뿐더러 차도 없었기 때문에 시내에 나가볼 엄두도 못내던 터였다. 버스가 있었지만 배차도 길었고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그 더위를 뚫고 한 시간을 달려갈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 일주일이 되어 휴가가 주어지고 나서야 시내로 나가볼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경주까지 왔는데 능 하나쯤은 보고 가야지. 경주의 마지막 모습은 초등학교 수학여행 시절에 멈춰있었다. 그래서인지 별 기대는 없었다. 첨성대···. 생각보다 작고 덩그러니 있었지. 불국사는 기억도 안나고.
큰 맘 먹고 몇 사람과 함께 시내로 향했다. 시골을 벗어나 한 달만에 도심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도시 자체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저 문명의 이기를 누릴 생각에 들떴을 뿐이다. 그날 그 잠깐의 외출이 내 인생의 방향키를 완전히 틀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로.
시내에 도착한 내가 가장 처음 꺼낸 말은 "이거 뭐야···?" 였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건 뭐 동산도 언덕도 아닌 새파란 둔덕이 불룩불룩 솟아있고, 초록 잔디가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 초록은 정말이지 악착같은 초록이었다. 지글지글 내리쬐는 햇빛에도 바싹 고개를 들고 제 몫을 다하는 초록. 어떤 것에도 지지 않고 계속 초록이겠다는, 그런 의지의 초록이었다. 모든 생명이 제 존재를 온몸으로 알리고 있었고, 그 여름 속에 내가 있었다.
내가 여태 가본 도시 중에 가장 압도되는 풍경이었다. 이건 유럽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무덤, 그러니까 말하자면 죽음이 도처에 있는데도 살아아있는 온갖 것의 활기가 넘쳤다. 죽음과 생명이 한 데 엉켜 웃고 있었다. 서로를 두려워하거나 시기하지도 않고서 그렇게.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어쩌면 삶이란 게 그런 걸지도 몰랐다. 삶과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 응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그저 삶은 삶대로, 그러다 찾아오는 죽음은 죽음대로 바라보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것. 그런 아이러니 속에서도 사랑하고, 웃고, 존재함을 잃지 않는 것.
우리는 찌는 더위 속에서도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했다. 그러기엔 풍경이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므로.
우리는 경주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 분을 만나 맥주를 마시고 한참 떠들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꼭 서울이,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삶의 지도만이 정답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
그러고선 조금 알딸딸한 걸음으로 고분군을 걸었다. 나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런두런 말소리와 더운 바람이 실어오는 여름 냄새가 섞여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내 기분을 설명하자면, 황홀했다.
황홀 :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하다.
술 기운인지 거짓말 같은 풍경 때문인지 눈앞이 어릿어릿했다. 이 순간이 오래도록 찬란의 얼굴로 남아있으리란 것을 예감했다.
고분군을 지나 돌담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함께 간 친구의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나, 여기서 살아야겠어."
구체적인 계획이나 꿈이 생긴 게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의욕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어야한다. 이 도시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버스를 타고 감포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황홀했다. 삶의 방향키를 다시 내 손으로 쥔 기분. 내 인생을 내 뜻대로 꾸려갈 수 있다는 유능감. 나라는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환희.
그날 나는 인생의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마지막 한 페이지를 넘긴 것이다. 그 종이 한 장 만큼의 차이로, 그저 환기를 위해 선택했던 경주행이 내 인생을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제야 나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내 삶은 온통 빈 페이지였다. 내가 내 힘으로 써내려가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근거 없지만 가장 확실한 결심을 했다. 눌러 앉을 결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