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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an 17. 2023

Scars To Your Beautiful

(2) 야경은 보이지 않았어

까맣고 차가운 밤이었다.


바람이 세차게도 불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러 가는 짧은 길에도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야만 했다.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다리를 노출하기 위해 입었던 미니원피스는 대실패였다. 멋부리다가 얼어죽는다는 것을 몸소 배웠던 하루. 바깥 산책로를 걷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산 아래라 그런지, 한기가 도심과는 차원이 달랐다.


중거리 연애를 하는지라, 우리에겐 헤어질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헤어지기에 최적인 시간대의 기차 탑승시간. 기차역까지 시간을 계산했을 때 한두 시간 꽁냥거릴 정도의 여유가 되었다. 드라이브 따위로 우리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 길들은 무용했으니까.


지나가다 차를 세울만한 곳이라 보여 세운 주차장. 알고보니 그곳은 그 인근에서 명소로 통하는 전망대였다. 추운 날씨에도 야경을 보러 온 시민들이 몇몇 있었다.


적막한 차 내부에서는 알지 못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었다. J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니 멀리 보이는 야경이 보이지 않았다. J는 내 머리 위에 머리를 기대어서인지 야경이 보였나보다. 자꾸만 야경이 예쁘단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잠깐 들어 “응. 진짜 예뻐.”하곤 다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산 아래에 작게 빛나는 소도시의 불빛은 예뻤다. 내가 본 야경의 규모 중에 가장 작은 야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담하니 마음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대어있던 그 시간에 비할 것은 못되었다.


어깨에 기대어 있던 그 순간에 나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니, 멈추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세상 고요한 분위기에 우리 둘만 있는 기분이라 “지금 이 순간 난 더 바랄 게 없어.”하며 입 밖으로 툭 뱉어질 정도였다. 뱉고 나니 민망했지만 그게 진심이라 오히려 잘 된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자그마한 조각이나마 내 진심이 보였을까 기대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 J는 “나도 그래”라는 말로 시작해 내 마음도 네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몇 마디로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참으로 고맙게도 그 말들은 온전하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 내 마음에 앉았다. 우리는 함께 하고 있구나. 통하고 있구나. 은근한 뜨거움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 했다.


그 때 끝나가던 노래를 J는 황급히 다시 시작하게 했다. 듣던 노래가 좋았나? 그제서야 그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래의 볼륨이 작아서였는지 그 순간 분위기에 심취해서인지 들리지 않던 노랫소리가 들렸다.


Scars To Your Beautiful - Alessia Cara


그렇게 이 노래는 그 날의 우리 주제곡이 되었다. 뒤에 찾아보니 가사마저도 아름답던 노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이제는 노래만 틀었다 하면 다음 노래로 자동 선곡되어 하루 한 번은 꼭꼭 듣게 되었는데, 이 노래의 전주 멜로디가 시작되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때의 자그마한 야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내 팔에 J의 팔이, 내 머리에 J의 머리가, 따뜻했던 온기가 가감없이 그 때로 나를 데려다놓은 것 같다. 몇 번을 돌아가도 참으로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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