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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22. 2023

호텔 로비에 앉아 쓰는 글

낯익은 벨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기어코 머라이어캐리의 목소리를 뒤이어 꺼낸다. 역시나, 겨울 시즌 연금곡이라는 그 노래다. 원래 11월 초면 캐롤을 듣기 시작하는 사람이 바로 난데, 올해는 파혼 덕분인지 스스로가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거부하는 덕분에 캐롤의 'ㅋ'자를 검색하기 두려워 엊그제까지는 듣지 않았다. 아무튼 그러는 중이었는데 연말이긴 한 건지 호텔 로비에서, 식당에서, 백화점에서 지나다보면 솔찬히 들린다.


1박 2일의 출장이 있어 어제 경남 통영을 왔다. 출장이라기엔 여행 같고 여행이라기엔 너무나도 공적인 일정이다. 파혼의 여파로 흔들거리는 나에게 바람이나 쐬라며 회사 차장님께서 이 워크숍 참석자에 나를 포함시켜주셨다. 사실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당장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 계속 미루어 왔는데 오고보니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6:30a.m. 통영 앞 바다


오랜만에 해뜨기 전 바다도 감상할 수 있었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나나 우유도 마실 수 있었다. 바닷바람을 한참 맞고 있으니 내가 현실에 존재함을 깨닫기도 했다. 아, 예전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내가 현재가 아니라 어딘지 모를 곳에 존재하는 듯 할 때는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해보라고 하셨다. 가끔 과거나 미래에 마음이 가있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발가락에 힘을 준다. 내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느낌에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 말고도 불안을 느낄 때는 간판을 하나씩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요즘 간판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현재에 감각을 두는 것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글을 쓰고있다보니 집으로 돌아가고싶다. 내 집, 안락한 내 집. 내일은 친한 언니와 무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사실 나는 집콕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언니에게는 비밀이지만 나는 모든 날을 집에서 보내고만싶다. 나에게는 12월의 마지막 주말이 있으니 그 날 담뿍 집에 취해야지. 거실 쇼파에 앉아 창에 걸어둔 리스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른 게 나는 집순이가 될 운명인 것 같다. 가상현실에 접속하듯 내가 집으로 가는 행위가 그러하다. 완벽한 일과 가정의 분리이며, 어느 곳보다도 내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 애정이 간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나의 안전을 신경쓰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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