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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an 01. 2024

또 끝나가는 연휴의 밤에 쓰는 글

주변이 허허벌판이라 창 밖 풍경이라고는 길마다 놓인 가로등 불빛뿐인 내 집 공부방에 앉아 브런치를 켰다. 불안의 새싹이 트기 시작했을 때부터 써내려간 다이어리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도 그 다이어리의 하루치를 쓰고나니 생각이 많아져 여기까지 왔다. 내 경우에 혼자 지내는 것의 장점은 나 하나만 챙기면 된다는 것에 있고, 그에 비해 단점은 잡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군중 속에 있을 때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호흡곤란 증상이 최근 생겨났는데 혼자 있을 때는 그런 증상이 없어서 생활이 편하다. 쳇기도 덜하고 머리를 비워놓기가 가능해서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가 있다. 다만 일정시간이 지나면 스믈스믈 생각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그 생각들에 잡아먹히기가 딱 좋다.


그런 핑계로 오늘은 집에서 삼시세끼 해먹기에 바빴다. 놀러왔던 언니가 떠나기 전에 아침으로 김치볶음밥에 된장찌개를 끓여 조촐히 먹었다. 점심으로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은 두부를 부침가루에 묻혀 두부부침에 간장계란밥을 먹었다. 연휴 내내 드라마 비밀의숲 시즌1에 빠져서 지냈는데 드라마를 보다가 때 하나는 정확한 내 배꼽시계 울림에 사다둔 돈가스를 오븐에 구워먹었다. 비밀의숲에는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이다. 식사 후에 설거지까지 마치고나니 시간이 이미 밤 10시가 되었다. 몇몇 분들이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추천해준 이유가 분명했다. 간간이 들리는 대사 몇 줄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도 있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겠다 싶은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3일이 지났다. 처음 내 계획은 3일 내내 집에 콕 박혀 장봐온 음식들을 냉장고나 파먹으며 휴대폰을 멀리 하는 삶을 추구하며 책이나 내내 읽어야지 했는데 웬걸, 냉장고가 거덜난 거 말고는 다 실패다. 첫 날은 시작하자마자 ex가 줬던 편지를 보게되는 바람에 제정신 아닌 채로 하루가 지났고, 어제는 언니와 단둘이 연말 파티를 즐겼다. 언니 덕분에 24시간 정도는 훅 지나간 것 같아 다행이면서 고마웠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울다가 웃다가 미친 사람처럼 지냈을텐데. 내 옆에 있는 시간 가득히 예쁘다 예쁘다 해주다 간 덕분에 내일 출근할 에너지가 남았다. 알고 지낸 10년 넘는 시간동안 항상 연말이면 각자 일정으로 못본 게 몇 년이었는데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숫자초도 켜고 한상 차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한 해의 마지막 밤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의 삼재가 끝나고 내년은 좋기만 할 거라던 언니의 예언을 믿기로 하며 내 2024년은 시작되었다. 거실 쇼파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꺼이 맞이했고, 밝아오는 해가 여느 날과 다름 없었음에도 괜스레 희망차고 벅차오르고 그랬다. 내일부터 대망의 결산시즌이 시작되는데 긴장보다 여유를 가지며 들이대보려고 한다. 부디 무사히 잘 끝날 수 있길. 이 곳에서의 내 마지막 결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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