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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Oct 08. 2023

내게로 온 두 그림

시절인연 따라온 그림 두 점

   

나는 가끔 지나다 기회 되면 전시회를 간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굳이 찾아가며 보지는 않는다. 물론 돈 주고 사지도 않고 그림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던 내게 얼마 전 인연이 된 그림 두 점이 왔다. 뭐든 내게 오는 것은 시절 인연이 된 일이라 여기며 이제 그림을 걸어두고 보는데 묘하게 위로가 된다.     

‘연꽃과 물촉새’란 그림은 북한 화백님이 그리신 거다.


사실 그림을 구입하게 된 동기도 막연히 북한 예술가 돕기란 글을 보았을 때 맘이 동해서였다. 그때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좀 부담이 되더라도 하자 싶어서 덜컥했다. 그리고 나서 남편에게 그림이 올 거라 말하니 일단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면 걸어주겠다 한다. 사실 그림이란 게 누가 선물로 그저 준다고 해도 망설여지는 부분이다.   

   

점점 미니멀리즘으로 가고 있으니 살림도 줄이고 집 실내에도 가족사진 외에는 일체 공간과 벽을 비워 두려 하는 편이니 남편 말도 일리가 있다.

비가 몹시 오던 날 그림 두 점이 도착했고 실제로 보니 화면으로 보던 거보다 사이즈가 훨씬 크다. 그리고 연꽃 그림이랑 내가 처음 무조건 끌려 선택했던 옥수수길 그림이 같이 왔다. 옥수수 그림은 내 방에 연꽃 그림은 거실에 걸었다.    

  


연꽃은 동서양에서 사랑받는 꽃이지만 특히 불교적 색채가 짙다. 부처님을 상징하고 진흙 속에 고고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진흙탕 같은 삶 속에서도 향기롭게 피어날 수 있는 불성과 신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교 이전에도 인도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의 연꽃 여신상이 발굴되었고 오랜 인도의 민속에서 연꽃은 여성성, 다산성과 힘, 영원불사등을 상징했다.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중국에서는 극락세계를 신성한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라고 생각하여 사찰 경내에 연못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다.   

  



내가 연꽃을 처음 본 것은 함양 상림공원 에서였다. 십여 년동안 그곳 지역에 근무하면서 퇴근 후 늘 가면 연꽃을 볼 수 있었다. 연꽃은 개화시기가 7~8월이나 대략 6월에서 10월 초까지 오래도록 볼 수 있었다.

특히 비 오는 날 연잎에 물방울 튀기기를 하다 신문기자에게 사진 찍혀 그 사진이 기사와 함께 중앙지에 나기도 했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연꽃이랑 친하게 지내서 그런지 한때는 연꽃의 열 가지 교훈을 적어두고 새기기도 했었다.  

    

1.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2.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3.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 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고, 고결한 인품이 그윽한 향을 뿜어 사회를 정화한다.

............

10.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 꽃이 피어봐야 구별되는 장미나 찔레와 달리 연꽃은 넓은 잎에 긴 대로 처음부터 구별된다.     




그림에서는 잎이 마르고 지고 있는데 꽃만이 아직도 청청하니 피어있고 물 그림자를 드리우는 연꽃 줄기 위에 물촉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나는 내 나이가 마치 일 년 중 구월 초처럼 여겨지는 데 그림을 보는 순간 지금의 내 나이가 바로 딱! 이 시점이 아닐까 싶어졌다. 칠팔월에 개화되어 연꽃도 이파리도 싱싱하다 이제 늦게 핀 남은 꽃은 있으나 이파리는 지고 있는 구월 초입의 계절처럼.

물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연못 위에 새는 마른 연잎을 관조하고 있다.

키 큰 이파리는 생명공급을 위해 무성했었지만 이제는 이파리도 꽃도 지면서 점점 연근 뿌리가 열매처럼 익어서 사람들에게 줄 영양공급이 되어갈 것이다.      


구월은 이제 겉치레적인 이파리는 지고 남은 꽃과 열매 같은 뿌리로
갈무리되어가려는 시점처럼 여겨진다.
우리 인생도 겉치레적인 것은 사그라들고
이제 소중히 갈무리할 열매를 준비하여 남기며 가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가벼우니 사뿐히 연잎 줄기 위에 앉은 새가 나 같기도 하다. 암 수술 후 자가치료 중일 때 만난 이 그림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니 몸, 마음이 비워지고 가벼워진 나랑 결을 같이 한다.     

           

옥수수가 있는 풍경 그림은 처음 보는 순간 그림 중앙의 길이 끌렸다. 옥수숫대 사이로 난 길 끝에는 하늘만 보이는데 그 너머에는 강이 흐르고 있을 까, 산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눈이 그 길에 머물렀다.


길 중간에 무언가를 쪼아 먹는 오리 여덟 마리가 있다. 오리 하면 떠오르는 건 오리고기 보다 솟대 위의 오리다. 트롯가수 이찬원이 노래로 불러 유명해진 진또배기는 솟대의 강원도 방언이다.     


솟대는 새해풍년을 기원하거나 마을 입구에 마을의 수호신처럼 세우던 긴 나무 장대인데 긴 장대 끝에 나무로 오리나 기러기를 만들어 올렸다. 그 솟대의 새들은 천상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전령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길이 있고 오리가 있고 왼편에 수확한 옥수수가 매달려있고 넝쿨 속에 호박이 세 덩이가 보인다. 이 그림의 계절도 가을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 그림의 포인트는 왼편 위의 이 열매가 아닐까도 싶게 그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도 길가의 옥수숫대에 비해 색채가 뚜렷하다.     





북한작가의 그림에서 만나는 옥수수라서 그런지 마음이 짠하다. 옥수수는 그들의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감자와 함께 흉년이나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다.      

1990년대 북한은 봄에 쌀 1알을 심어서 잘 키우면 가을에 30알 정도를 수확할 수가 있지만, 옥수수 1알은 수백 알짜리 옥수수를 몇 개씩 수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옥수수가 곡물의 왕이라 선포하고 옥수수 재배를 권장한다그래서 산의 나무를 베고 산비탈까지 옥수수밭으로 개간해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단기적으로는 인민들의 굶주림이 해갈되는 듯하였으나 생각지 못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한다.    

        

큰비가 몇 차례 내리자 산의 나무를 베고 옥수수밭을 만들다 보니 나무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하여 지역의 큰 탄광들이 매몰되었고 석탄공급이 안 되자 북한의 주력 전기생산방법인 화력발전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옥수수는 생산량이 많은 반면 땅의 영양분인 지력을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작물이라 같은 땅에 옥수수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선 비료가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비료도 전기가 있어야 생산을 하는데, 전기가 부족하니 비료 생산도 중단되었고 결국 옥수수 수확량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로 인해 북한 인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일이 시작되고 북한은 이것을 오히려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극복하자고 선전하며 이 시기를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부터 240만 톤의 쌀과 달러, 물품을 빌려줘서 서서히 종료하게 되었다.     



내게 우연찮게 온 그림 두 점, 연꽃과 옥수수를 보며 그림들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들을 적어보았다그림 속에서 나를 보고 그림을 통해서 내가 서 있는 곳과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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