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행을 하고 싶어 영어선생이 된 건 아니다. 인생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고 복잡다단하고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나니 말이다. 그러나 내 꿈과 직업이 많은 부분 연결된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적부터 멀리 가고 싶었고 그래서 유학도 가고 교사 중에서도 영어교사가 된 걸 거다.
암튼 그래서 교직 30년을 마치고 나는 떠났다. 최소한의 준비로 나의 혼자 여행 떠나기,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먼저 남편의 성화로 5개월짜리 장기여행자 보험을 들고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집 생각이 1도 안 나도록 집안청소와 정리를 했다. 집 냉장고와 내 옷장, 책상 서랍까지 다 비우고 깨끗하게 정리했다. 떠나는 일은 단순히 설레는 것 이상으로 가슴 벅찬 일이었기에 뒤에 남겨두고 가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털끝만큼도 마음의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랬다.
마치 내가 길 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하나도 께름칙한 게 없을 정도로 비우고 정리하고 나니새 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홀홀 떠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기왕 떠나는 거 되도록이면 멀리 가자~! 가 모토가 되어 이스탄불에서 환승하고 이집트까지 날아갔다.
대부분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에서 여행은 빠지지 않는 첫번째 항목이다. 그다음이 해 보지 않은 운동 해보기나 악기나 그림 그리기등과 같은 취미활동들이 있다.
아래 버킷 리스트 시에서도 혼자 떠나는 여행을 맨 먼저 언급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에게 살아 있을 이유를 준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목욕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군가의 발을 씻어 준다.
달빛 비치는 들판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는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아무 날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낸다.
~데인 셔우드
사람마다 이번 생에 해 보고 싶은 일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니 주위에서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냐? 걱정되지 않냐? 불안하지 않냐? 등등 말들이 많았다.
떠나는 설렘만큼이나 긴장도 되고 염려스러운 면도 있지 왜 없을까? 하지만 그건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다 생기는 마음이라 본다.
나는 어렸을 적 운동회날 총소리 빵! 들으며 뛰어나가야 하는 게 무지 싫었다. 달리기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신나고 즐거운 일이지만 나는 총소리도 바로 뛰어 나가야 하는 압박감이나 긴장도 겁나고 싫었다. 그리고 갑자기 뛰면 땅이 출렁거리고 속이 메스꺼운 것 같았고 몸이 약해서 골인 지점 앞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이 나의 하고 싶은 영 순위 버킷 리스트가 되면 걱정도 두려움도 불패다. 그냥 내가 지금은 갈 수 있으니 간다다. 아주 초간단으로 그 뿐이다. 사촌언니가 그래, 너는 외국어가 되니 혼자 여행 갈 수 있는 거다 했다. 내가 웃으며 언니는 한국말이 되는 우리나라에선 왜 혼자 여행을 못 하냐? 고 물으니 말문이 막혀 웃었다.
22년 4월 1일에서 9월 11일까지 혼자여행 중
마침 글을 쓰는 중에 친구 전화를 받았다. 뉴질랜드로 패키지여행을 떠난다기에 영어도 잘하는데 혼자 자유여행으로 가라고 하니 무섭다고 한다. 뭐가 무섭냐고? 한국에서 택시어플 쓰듯 외국에서도 숙소, 택시어플만 사용할 줄 알면 된다니 그래도 무섭다 한다. 사람은 다 자기가 안 해 본 것은 접시물에 빠져 죽을까 봐 무서워한다.
그래서 버킷 리스트가 필요한 것 아닐까? 큰 일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극복이 안 되는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물론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다. 해 보기 전에는 무슨 달나라에 가는 것 같았던 일도 일단 해보고 나면 시시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니 일단 해 봐야 하는 거고 그래서 버킷 리스트는 필요하다 본다.
일상과의 잠시 결별, 여행은 나에게 생판 모르는 것들과의 조우요 맞닥뜨림이어야 했다. 그래서 낯선 사람, 낯선 장소에서 그간 내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이어야 여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혼자 떠남이 필요하다 본다.
부부동반, 가족여행은 어디까지나 가족이 우선이지 여행은 두 번째다. 친구랑 그 누구랑 떠나도 혼자 가면 100을 보는 여행이 둘이 가면 50을 보고 열 명이 가면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이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놀다 오는 여행은 친목도모 여행이다. 물론 그런 여행도 재미와 의미와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필요했다.
나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시간이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