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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16. 2024

4 년만의 정모

친정 사촌계모임


 

코로나로 인해 못했던 친정 사촌계모임을 4년 만에 했다. 물론 결혼식에서 만나고 가까운 번개모임으로는 자주 보긴 했지만 모두가 한 자리 모이는 정기모임은 4년 만이었다.  

    

친정 사촌들과 모임을 40년째 해 오고 있다. 그러니 내 나이 20살 대학 시절부터 환갑을 넘겼으니 정말 오래 해 온 만남이다.      


큰집과 큰고모네 작은 고모네 이렇게 4집 15 가족 30명 부부가 이전에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니 어른들과 60명이 넘게 모일 때도 있었다. 여름에는 바닷가로 계곡으로 가서 모이고 그러다 아이들이 크니 이제 우리 세대만 위주로 모이고 있다.     


사촌 여동생이 사는 울산에 초대를 해 주어서 이번엔 방어진 회도 먹고 대왕암의 힘찬 파도소리 들으며 출렁다리도 걸어보고 바람도 쐬고 왔다. 저녁에는 윷놀이를 하느라 신명이 나서 목이 쉬도록 놀았다.  

나이 60이 다 넘은 우리 자매들은 팔순이 넘은 고모들 앞에서 소양강 처녀 라인댄스로 재롱잔치도 해 드렸다 ㅎㅎ


이전 우리 어렸을 적과는 다르게 윷판에 임신(업어가기), 퐁당 등 재밌게 그려 넣고 윷에 백또도 만들어 딸, 아들팀으로 나누어 목청을 돋우며 했다. 전통놀이인 윷놀이는 팀플레이로 청군 백군처럼 힘을 합쳐하는 놀이라서 더 신이 난다. 첫 번째는 딸팀이 이겼는데 상금을 몰아 건 마지막 한판에서 아들팀이 이겼다. 해서 딸팀이 친정에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온 거 같아 지고도 기분은 더 좋았다.   


  




큰집, 우리 집 고모부님들 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이제 고모 두 분만 살아계시니 모두들 빙 둘러서서 새배도 드렸다. 언제까지가 허락된 시간일지 모르나 그저 건강하게만 오래 사시길 바랬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기어다니던 아기였던 막내고모도 이제 증손주, 증손녀를 보고 그 세배를 받으셨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일찍이 우리 할머니는 청상에 과부 되셔서 그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 4남매를 키우셨기에 아버지 형제, 남매간에 우애가 남다르셨다. 해서 오늘날 까지 우리도 이어받아서 사촌들끼리 우애를 다지며 모임을 해 올 수 있는 거 같다. 요즘 시대에 이웃사촌과 동호회 모임은 있어도 명절이 아니면 외국으로 흩어져 살기도 해서 형제끼리도 자주 볼 수 없는데 말이다.      


부부도 부모자녀도 형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사촌들도 다 가족 인연들이다. 하니 이번 생 여정에서 모두가 귀한 인연들로서 항상 서로 보듬고 한 발 앞서 양보하고 한 손 먼저 내밀어 마음 내주면서 그리 살다가길 바랄 뿐이다.      


사촌계모임을 다녀와서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서 아버지 정년퇴임하면서 내신 책을 꺼내 보았다. 어느 덧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되니 그때는 지나쳤던 글귀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이렇게 쓰시고 아버지는 두 해 지나 돌아가셨으니 새삼 기록의 중요성도 느낀다.

 

안녕하십니까? 청강입니다.
 
무릇 한 나라에는 국사(國史)가 있듯이,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나면 크든 작든 한 개인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어느덧 6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이 시점에 나는 보잘것없지만 나의 지난날들을 기록하여 제3세대에게 미래의 삶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일지를 적어 봅니다.
여기에서 나는 자서전(自敍傳) 형식으로, 출생부터 국가에 봉직한 지금까지의 생활만 적겠습니다. 왜냐하면 여생(生)의 문은 언제 닫을지 모르니까요. 그리하여 이 사회를 위하여 남긴 나의 흔적(痕迹)인데 얼마나 봉직하였는지, 또는 보람된 일이 그 얼마인지 나 자신도 반성문(反省) 정도로 기입하되, 나의 장·단점도 가감 없이 적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좋은 일 나쁜 일 할 것 없이 진솔하게 쓰다 보니 어떤 점은 나 스스로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참되게 적는 것만이 후세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있는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집 가훈(家訓)을 소개하면, "남보다 더 배워 많이 익히고(勤學), 열심히 일하며 (勤勉), 양보심이 강한 사람이 되자!"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읽기를 권하여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 없으며, 틈틈이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거듭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해 올리는 바입니다.
고맙습니다. 1999년 8월 清江 씀      

    


청강은 아버지의 호다. 아버지는 이 사회는 사람들이 각축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니 ”양보심이 강한 사람이 되자 “ 늘 강조하셨다. 내가 먼저 한 발 양보하면 인간관계든 뭐든 다 원만하다며. 그러는 아버지 자신은 자수성가형으로 그야말로 힘든 삶을 사셨음에도 자식인 우리에게 양보심을 심어주려 하신 것은 앞서 사신 부모의 지혜였다 본다.      


배운 것은 짧아도 나누고 베풀기를 즐기셨던 어머니, 그리고 일생을 고단하게 그러나 즐겁게 가족을 위해 사셨던 아버지, 그분들은 가시고 이제 어느 덧 우리가 그 세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다 갈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되는 사촌모임이었다.         


사진 왼쪽 위, 아래 아버지 어머니모습~ 4형제분들과 동남아 여행때 사진이다~~이제 아래쪽 가운데 두 분 고모님들만 살아계신다 ㅠㅜ

  



울산 방어진 대왕암과 출렁다리


저녁과 아침으로 추어탕과 회, 대구탕으로 배 부른 우리들은 조카가 하는 Bite Me Pizza 에서 맛있는 커피와 점심도 잘 먹었다

                     




이번 다가오는 주말에는 밀양의 사촌 여동생집에서 내 고향 친구들,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다시 한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겠다. 나는 10살 때 대구로 전학 오면서 유년의 고향을 떠나온 지 50년인데 그 친구와 언니를 만나게 된다니 내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 또 어떤 빛바랜 흑백의 스냅사진 같은 추억들을 만날게 될지 설레면서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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