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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Feb 11. 2024

명절여행

내 집에서 시간여행


연휴가 길어지니 해외로 잠시 다녀오는 인파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움직이지 않고 내 집에서 나를 찾아오는 자식과 형제들로 앉아서 여행을 한 기분이다.     

 

공간은 그를 점유하는 자들의 에너지로 채워지니 같은 공간이지만 평소와 다른 에너지로 꽉 찼던 5일을 보내고 나니 마치 내가 다른 공간이동을 하며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해서 명절여행이라는 말을 해 보았다.    

 

설 보다 며칠 앞당겨 온 큰아들로 인해 나는 진작부터 명절 기분이 났다.

‘옴마 뭐 해 놓을까?’ ‘김밥 하고 잡채 해 줘’  둘 다 손 가는 음식이지만 아들이 먹고 싶다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게 엄마들 마음이다.      

우엉을 많이 넣고 이제 아들도 커서 잘 안 먹는 햄, 맛살은 빼고 어묵을 진간장에 살짝 조려 넣었더니 맛있었다. 잡채도 어차피 명절용으로 장 보면서 한 단이 아닌 두 단을 사 둔 덕에 시금치 듬뿍 넣어했더니 팍팍하지도 않고 먹을 만했다.      


다음날 아직 신혼인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집안은 더 꽉 찬 분위기다. 남편은 신이 나고 좋은 지 이거 저거 꺼내놓고 자랑 겸 보여주고 먹이기 바쁘다. 남편이 최근에 익힌 감자수프도 그중 하나다. 치즈, 양파도 들어가는 아빠표 감자수프를 다들 좋아했다.

명절 전후 차가 밀리는 공원묘지에 먼저 들러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부터 드렸다. 그리고 뷰 좋은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며 여유를 가졌다. 차례 음식준비 마라톤 전 잠시 한숨 돌리고 숨 고르기 하는 거처럼.      




명절 장 보기는 보통 세 번을 한다. 먼저 재래시장 어시장에 가서 생선과 나물거리등을 미리 사 두고 다음 날 마트장을 본다. 그리고 그래도 빠진 것이나 마트에 없는 것은 쿠팡 배송으로 마무리한다. 그렇게 준비한 사전 장보기와 꼼꼼한 재료 체크 후라야 순조롭게 음식준비에 들어갈 수 있다.     

 

기름 냄새나고 시간 걸리는 고난도 명절음식이 전요리다. 해서 아들 며느리 둘에게 7~8가지 전요리를 맡겼다. 둘이 환상의 콤비처럼 속닥거리며 깔끔하게 해 내는 것을 보니 마냥 대견하다. 남편은 좋아서도 부엌을 자주 들락거리며 안주거리가 좋으니 막걸리 한잔 하며 쉬다 가자며 일의 흐름을 끊으려 하니 나도 태클을 건다. 하던 일 일찍 다 마치고 편안히 앉아 쉬는 게 더 좋지 않냐며.


그러면서 시어머니 아버지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아들 며느리 앞에 과감하게 보여준다. 어차피 가족은 이렇게 민낯이 되어야 서로 손님이 아니라 빨리 편해진다 여기며.     


큰 아들은 무 벗겨 나물 채 썰고 탕국에 들어갈 무 네모 썰기 등등 내 조수역할을 잘해 준다. 그렇게 각자 손발을 맞춰가며 하는 동안 나는 나물 7가지를 손 빠르게 해 낸다.

막내 시누 남편이 나물 비빔밥을 좋아해서 양도 가짓수도 좀 많이 했다. 직업상 외국출장이나 외국 체류기간이 길어 한국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실컷 비빔밥을 드실 수 있도록.      






설날 아침 그래도 세배는 받아야지 하는 남편에게 아이들이 스스로 하지 않는데 무슨? 하며 반대했다. 우리 집은 부모자식 사이 반말에다 다른 집보다 좀 편한 식의 대화를 하는 편이라 갑자기 다 큰 아들들에게 세배하라 하기도 좀 어색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어차피 가족문화란 것도 나이에 맞게 만들어가는 게 맞다 싶고 굳이 남편 말을 안 따를 이유도 없었다.      


해서 부엌에 들어가 분주해져 정신없기 전에 간단하게 앉아서 마음 나누기식으로 새해 바람 같은 거 얘기하자고 했다. 처음엔 약간 떨떠름해하더니 둥글게 앉았다. 그리고 아빠, 엄마부터 말을 하고 나니 둘째 아들이 그럼 시작한 김에 세배하겠다고 일어섰다. 


그렇게 얼떨결에 세배를 받았다. 사실 조금은 옆구리 찔러 절 받은 식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새 식구 들어오고 정식 설은 처음인 지라 하고 나니 잘했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차례상을 차려 예를 올리고 오후엔 시누와 형님들이 오셨다.      





나는 일남 팔 녀 집 외며느리고 시부모님들은 돌아가신 지 오래다. 그러니 우리 집이 시누들에겐 친정인 셈이다. 늘 다 오시던 분들이 이번엔 두 사람이 빠졌다. 명절이 아니어도 자주 보기야 하지만 명절에는 주로 하루 자는 걸로 일박이일 보냈다. 그런데 이제 큰 형님이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조금씩 모이는 시간도 단축되는 듯하다.       


저녁에 아들 며느리 다 보내고 시누들도 가시고 다 치우고 마무리하고 나니 내 명절 시간여행도 끝난 거 같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썰물 밀려나간 거처럼 잠시 허전하기도 하다.      


이제 다시 글쓰기와 산책 운동 등 일상복귀로 나의 페이스를 찾아가겠지만 명절은 그래도 우리 삶의 악센트로 큰 역할을 한다 본다. 밋밋한 일상에 명절이란 양념이 없으면 우리 삶이 무슨 재미랴!


사실 명절증후군 하듯이 숙제 같은 할 일을 앞두고 나도 마음의 긴장이 몸의 긴장이 되어 지레 뻣뻣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랴 명절은 명절이라 만남은 특별한 마음설렘과 반가움이 있다.

가슴속 사랑의 빛이 터지고 웃음꽃이 피고 내 자식을 바라보는 눈길에 애정이 뚝뚝 흐른다.

형제 동기간 서로 생각은 달라도 이생의 엮인 인연만큼 피는 물보다 진하니 그걸 매번 확인한다. 푸짐한 음식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무게 불은만큼 우리 영혼도 살쪄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설도 잘 보내고나서 찾아보니이제껏 음력설을 구정이란 말로 혼용해서 쓰고 있었는데 용어정리가 필요할 거 같아 아래 사족을 덧 붙인다.     







Ps     

 결론부터 말하면

양력 1월 1일은 새해고
음력 1월 1일은 설이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양력설과 음력설이라 하며 이중과세를 해왔다. 1월 1일 새해는 신정이라 부르며 일본사람 설이라 여겼고 구정 음력설을 진짜 설이라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신정, 구정이란 말은 일제 강점기 그들의 설을 강제하며 우리 설을 없애려 붙인 말이라 하니 이제 안 쓰는 게 맞는 거 같다.


한때는 1월 1일은 3일간 연휴로 하고 음력설은 이중과세를 막자며 학교도 관공서도 휴일로 지정하지 않아 음력설을 쇠기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우리 고유의 명절을 복원하자는 취지로 1999년부터는 신정 연휴를 양력 1월 1일 당일만 휴일로 줄이고 설날은 연휴로 정하면서 우리 설날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해서 양력 1월 1일은 새해 덕담을 하는 새해로 생각하고 맞이하고 음력 1월 1일은 우리의 고유한 명절인 설날로 보고 지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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