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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18. 2024

조지아에서 와인 마시기

8천 년의 와인 역사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조지아 속담이다. 김치 하면 우리나라이듯 와인 하면 조지아다.


조지아에서 와인 마시기가 내 버킷 리스트가 된 것은 내가 와인 애호가이거나 와인마니아여서가 아니었다.


그냥 한국에서 조지아 와인을 하도 들어서 내가 일단 조지아란 나라를 가긴 갈 건데 거기서 와인을 마시자라는 의미로 버킷 리스트가 된 거였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보고 나서 나는 조지아로 날아갔다. 공항에서 출국심사할 때 내가 묵을 숙소이름과 남편 이름을 물어봤다. 그리고 은행 잔고에 돈은 얼마 있느냐? 는 등 꼬치꼬치 묻길래 나를 무슨 난민취급하냐며 승질이 나려 했다. 그러다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보니 이집트에서 모래바람에 그슬린 데다 부스스한 머릿결에 슬리퍼를 신은 내 모습이 내가 봐도 꾀죄죄했다. 해서 다음부터 공항 이동 시는 가급 깔끔한 외모를 갖추어서 불필요한 오해 살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암튼 그렇게 조지아를 입성하고 첫날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해서 2주 동안 정말 물처럼 식사 때 한두 잔은 꼭 마셨다.

   

조지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포도가 재배되었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지역 중 하나다.

예수님 기원 한참 전인 8천 년 전에 조지아에 와인이 있었다. 성경에도 술 취한 노아에 대한 언급이 있고 수메르 점토판 기록으로도 남아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랏산 근처이고 아라랏산은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위치하니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는 노아를 그들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코카서스 산맥을 기준으로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아르메니아 3국코카서스 3국으로 부른다. 


조지아는 서아시아와 동유럽의 경계에 위치해서 지리적 특성상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고 1991년 구 소련연방에서 독립될 때까지 오랫동안 페르시아, 오스만 투르크등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다. 오래된 수도원 교회가 카즈베기 산 꼭대기에 있는 것도 그래야만 보물들과 교회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렇게 조지아는 전쟁과 지배라는 역사의 굴곡을 거쳐오면서도 그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 종교, 문화를 지켜온 꿋꿋한 면이 작지만 강한 나라여서인 지 나도 조지아인들에게 더 깊은 유대감과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듯 하였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와인을 만든 나라가 조지아로 믿고 있고 그들이 8천 년의 와인 생산 기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사실 와인이라는 말도 맨 처음 조지아어로 와인을 뜻하는 그비노 (Ghvino)에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Vino),  프랑스에서 뱅(Vin)이 되었다가  독일어로 바인(Wein) 그리고 영어의  와인(Wine)이 되었다.


내가 트빌리시에서 첫 번째 숙소로 머물던 호텔 식당에도 벽에 커다란 포도나무 문양의 타일 장식품이 있었다. 조지아를 상징하는 십자가도 탐스런 포도나무로 에워쌓여 있으니 조지아와 와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조합인 거 같다.







카케티는 조지아의 대표적 와인산지다.


다양한 와인 산지로 나타낸 조지아 지도다. 남동쪽 아래 카케티 지방이 있다.


조지아가 와인국의 시조라 해도 파란만장한 그들의 역사가운데 이슬람권 지배하에 있을 때에는 한 때 술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에도 밀주처럼 숨어서 마시는 술맛이 더 좋았다 한다 ㅎㅎ

보르도가 프랑스 와인을 대표한다면 내가 간 카케티는 조지아 와인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와인 투어는 확실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같은 투어상품으로 카즈베기산과 올드캐슬 보러 갈 때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아침에 후다닥 마지막으로 승차를 하니 맨 뒷자리에 중국계 호주인 아줌마가 헬로 하며 반긴다. 그녀는 오래전 호주이민을 했는데 현재는 오만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그 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안, 두바이부부등이 와이너리 투어를 함께 하는 일행이었는데 가이드가 다 영어가 되면 영어로 통일해서 설명하겠다 하니 모두 오케이 한다.


상당히 많은 동유럽권 사람들이 구 소비에트 체제 영향으로 러시아어는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사실 나랑 호주여사 두 사람 빼곤 다 러시아어가 모국어 같은데도 영어로 통일해서 하는 설명에 오케이 하는 것도 고마웠지만 대부분 다 영어가 된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러시아 청년에게 물어보니 고등학교에서도 영어는 필수가 아닌데 다들 선택해서 공부한다고 했다.


그렇게 배운 영어가 듣기에 문제가 없고 말하기도 유창하니 30년 영어교사였던 나는 새삼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우리의 영어교육 어디서부터 문제인가?...ㅠㅜ.. 입시에서 영어가 중요과목이란 타이틀부터 제하고 그저 영어는 실용영어로 가야 한다는 게 교단에서의 나의 절규 같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람이었다.






조지아 와인의 특징은 일단 포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구 400만의 작은 나라 조지아에서 기르는 포도의 종류는 500종 이상이 된다. 지역마다 기후가 달라져서 포도 품종도 다른데 이중 사페라비(Saperavi) 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이 가장 유명하다.


독창적인 조지아 와인의 핵심은 전통 주조 방식인 '크베브리(Kvevri) 방식'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크베브리는 물 방울처럼 끝이 뾰족한 점토 항아리인데 잘 익은 포도를 껍질뿐 아니라 때론 줄기까지 항아리 안에 넣어 입구를 진흙으로 단단히 밀봉시킨 후 땅에 묻어 4~6개월 숙성시켜서 와인을 만든다.


내가 탐방한 와인의 본 고장 카케티에서도 이 황토항아리 숙성 전통비법으로 빚은 와인이 빛깔이 곱고 향이 진한 걸로 유명했다. 조지아의 음식을 '한 편의 시와 같다.'라고 칭송한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은 조지아 와인의 심플한 맛이 프랑스 와인의 복잡한 맛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나는 원래 술은 맥주, 막걸리, 와인밖에 못하고 소주는 안/못 마신다. 그런데 체험장에 도착하자마자 차차라는 소주보다 더 센 것을 일단 츄라이 해 보라 하며 주었다. 조지아에서 카즈베기산을 다녀온 후 감기몸살이 났는데 주인 아저씨가 차차를 마시고 차차 춤을 한 차례 추고나면 감기도 나을거라며 적극  권했다 ㅎㅎ 원샷으로 마시는 거라 해서 그리해 보았는데 다행히 속은 화끈해도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주인아들이 포도주 종류별로 줄을 세워놓고 일일이 제조법과 맛을 설명하며 따라주는데 아무리 양이 작아도 오전 시간에 열 잔 이상을 시음하니 조금 알코올기운의 반응이 온다.


이거 저거 마셔보니 역시 내 와인 취향이 절대 sweet은 아니고, semi dry 나 아님 dry로 더 확실해졌다. 달달한 와인은 몇 모금에 질려서 싫고 화이트와인 중에서도 드라이가 더 좋았다. 그렇게 체험을 하고 와인이 싸도 너무 싸니 다들 몇 병씩 사는데 나는 혼여자(혼자여행)라 밥 먹을 때 레스토랑에서 글라스 와인으로 마시련다하고 말았다.


돌아오면서 너스레를 떨며 재밌게 설명해 주었던 주인장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가장 좋은 와인은 내게 맞는 와인이고 가장 이쁜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


조지아 와인에 대한 또 다른 명언은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가격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준다는 것이다.     





와인 수출은 얼마나 하느냐? 물으니 주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에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유럽시장이야 일단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남미의 칠레등 다른 와인산출국들이 많으니 그럴 법하다. 오크통이 아니고 우리가 김칫독 묻던 거처럼 흙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숙성시키는 방식이 정말 독특하게 여겨졌다. 포도만 넣는 것이 아니라 줄기 이파리채 넣어 숙성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2 주동안 머물면서 나는 와인 못지않게 길가 과일 생즙 주스를 많이 마시고 다녔다. 첨엔 주스를 짜는 옆에 병이 있길래 주스인 줄 알고 물으니 와인이라 했다. 조지아 오기 전 한 달 머물렀던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의 규정상 맥주 한 캔 사려해도 마트에서는 안 팔고 정해진 곳에서만 팔던 거랑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길거리에서도 마트에서도 물 보다 와인이 먼저 눈에 띄는 나라 조지아였다.


조지아 사람들은 기쁜 날에는 28잔의 와인을 마시고 슬픈 날에는 18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즉 말해서 기뻐도 슬프도 와인을 마시고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당연히 와인을 내놓는다. 조지아인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자 자존감 내지는 자긍심이 아닐까 싶었다.



사이즈도 다양한 조지아 와인


이전에는 깐지라 불리는 이런 산양뿔에 따라 마셨다고 주인 아들이 설명한다~그런데 이 뿔잔은 마시다 놓을 수가 없으니 자동 원샷 잔이 된다ㅎㅎ

와인 따라 시음잔도 다 따로 해서 열 잔 이상을 ~~~

차차 시음하기~차차 Chacha 는 크베브리 항아리 바닥에 침전된 포도 찌꺼기로 만든 조지아 전통술인데 프랑스 코냑맛과 비슷한 알코올 도수가 40~52도의 독주다. 와이너리에 도착하자마자 차차를 권해서 이상했는데 조지아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집에서 담근 차차를 환대의 의미인 웰컴주로 준다고 한다. 옆에 시원한 오이나 장아찌 같은 것을 안주삼아 같이 먹는다.


조지아와인의 비결인 크베브리 황토 항아리, 여기에 포도를 넣고 밀봉해서 땅에 묻어 숙성시킨다.


와인이랑 먹으면 좋은 안주도 되는 조지아의 대표간식 츄르츄켈라~ 견과류로 만든 거는 곶감 빼먹듯 하니 맛있었고 붉은 색깔의 것은 우리나라 순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사실 와인이 들어가서 붉은 색갈이 나는 거다


레스토랑 앞에 재치 있는 말~ 와인이란 친절한 한마디가 당신의 하루를 바꾼다, 말로 부족하면 이리로 들어오시라는 식당 홍보문구다 ㅎㅎ

  

산양뿔 모양의 깐지로 건배하는 타마라 동상, 프랭크 시나트라 명언으로 유명한 술집이 동상 바로 옆에 있다.  "알코올은 최악의 원수일지 모르나 성경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는 그의 명언 ㅎㅎ


와이너리 아버지와 아들의 설명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0_GpNxw7kVg     


2021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에서 상영된 <Our blood is Wine>은 조지아 와인에 대 한 다큐멘터리인데, 조지아인에게 와인은 고난 가운데 살아남은 그들의 정체성이다. 우리 피는 와인이라는 제목부터가 인상적이다.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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