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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25. 2024

50년 전 초딩친구 만나기

50년만에 만난 고향언니


나는 11살 때 고향 경주에서 대구로 전학을 갔다. 해서 내 초딩친구들과 5학년까지는 같이 다녔다. 7살에 학교를 갔던 토끼띠인 나는 친구들 대부분이 범띠였고 당시 시골학교가 그렇듯 나 보다 두 살 많은 친구도 더러 있었다.


학교까지 걸어오기가 먼 동네 아이들은 한 두해 늦게 입학하던 시절이었다. 워낙 체구가 작았던 내가 나이까지 한 두 살 아래였으니 일학년 통지표에는 몸무게 17킬로에 학교생활 적응을 잘 못한다고 쓰여있었다.     

 

전학을 갔지만 시골에 큰집이 있었기에 간간히 고향마을을 갔고 사촌들을 통해 친구들 소식도 들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을 몇 번 만났는데 이번엔 밀양 사촌동생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친구 언니가 서울에서 같이 오는데 정말 그 언니는 거의 50년 만에 처음 보는 셈이었다. 함께 만나니 당연히 옛날 유년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우게 된다.      





나랑 친구가 동네 서나무 아래에서 엿장수 엿판을 털었던 얘기는 두고두고 재밌는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어느 날이었던 거 같은데 엿장수 아저씨는 낮술이 한 잔 되어 엿가락 장단을 하다 고물 가지러 어느 집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우리 중 한 명이 잽싸게 엿판의 엿을 집어 들었고 순식간에 너도 나도 같이 있던 조무래기 우리 동생들까지 합세하여 집을 수 있는 만큼 엿을 집어 들고는 토꼈다.      


나중에 돌아와서 엿판에 엿이 사라진 걸 본 엿장수는 느릿느릿(내 기억으로) 요놈들 어디 있냐? 는 식으로 동네를 뒤지며 찾으러 다니는데 나는 그때 친구 남동생이랑 그 집 대문 앞의 푸세식 변소 안에 숨어있었다. 좁은 변소에 두 아이가 숨죽이고 냄새도 안 나던 지 서 있는데 엿장수가 금방이라도 대문으로 들어와서 문을 벌컥 열 것만 같았다.      


해서 다시 나와서 동네 뒷산으로 줄행랑을 쳤고 산 위에 올라가서 엿장수가 어디로 가는지 동태를 살피며 보려 했다. 그러다 나중에 어찌어찌 내려와서 엿은 버리거나 어디 숨기고 각자 집으로 갔는데 엿장수는 아주 여유롭게 우리 부모들에게서 아마도 엿판 값을 후하게 쳐서 받고 돌아갔다고 들었다.

그때 심정은 정말 감옥 가는가 보다, 이제 학교 못 가서 어쩌지? 이런 상상까지 했었다.  


        



그 밖에도 친구 언니가 딸(기) 따러 가자며 다들 주전자 가지고 나오라 해서 작은 노랑 양은 주전자를 들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한참 딸을 따는데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언니가 ‘토끼라’ (도망쳐라) 해서 우리는 혼이 나갈 듯 도망쳤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우리는 그냥 산에 딸 따러 가는 줄 알았지 남의 밭에 갈 줄도 몰랐고 그걸 서리인 줄도 모르고 서리를 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그 외에도 집에 쌀 가져와서 그랑가(냇가) 돌에 냄비 얹어놓고 밥 해 먹고 놀았던 얘기, 언니의 쌀 훔쳐서 복숭아 바꿔먹던 얘기등 다들 무용담 같은 추억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으니 정말 쌓였던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했다. 그저 순진무구하던 시절의 추억과 기억들이니 더 큰 웃음이 날 뿐인 이야기들이다.     


농촌에 현금도 없고 용돈개념도 간식도 없던 시절 얘기다. 함께 했던 사촌오빠는 몰래 참깨가져다 주고 소주바꿔먹은 얘기도 했다.


사촌동생이 직접 지은 황토방에 엉덩이를 데일 것 같은데 그기 좁은 한 평방에서 얼굴에 팩을 붙이고 8명이 윷을 놀았다. 이튿날도 배 불리 먹고 또 윷을 노는데 어찌나 신명을 내었던지 다들 목이 쉬어서 마지막엔 ‘또로 모야’ 소리 지르는 훈수 없이 하자고 규칙을 정했다.

만약에 모해라~빽 또해라등 훈수를 하면 그냥 윷을 못 놀고 굶고 지나가기로 하고 묵언수행 하듯 다들 입을 다물 윷을 던지니  갑자기 말문 닫는 걸 못 참아 터져나오는 소리로 굶고 지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렇게 일박 이일 동안 얼마나 웃고 떠들었던 지 몸에 뭉쳐있던 혈이 뚫리는 듯했다. 무구한 그때의 기억과 웃음이 그간 막혀있던 혈을 뚫어 준 듯 시원했다.

한 번씩 살아가면서 유년의 친구와 언니들과 만나서 그때처럼 그렇게 세상 걱정 없이 웃고 놀던 시절로 되돌아갈 만하구나 싶었다.      


사람은 성격이 잘 안 바뀌고 어렸을 적 성격 그대로 간다는 걸  50년 된 초딩친구를 보며 새삼 느낀다.


한 동네에서 나랑 꽃님이, 별님이로 불리던 소꿉친구는 오자마자 퀼트로 만든 걸 나눠준다. 인심 좋은 모습 그대로 퀼트 가방에서 군고구마랑 떡이랑 얼굴팩,영양제까지 하나씩 요술주머니처럼 꺼내 놓는다.

학교 때 얌전하며 공부만 잘하던 친구는 올해 초등학교 교사 정년퇴임을 한다. 시골아이 같지 않게 얼굴이 희고 곱더니 지금도 부러운 아기 피부다. 세 자녀를 뒀어도 수영과 요가를 하니 몸매도 날렵하다.      


어찌 50년 반 세기가 흘렀어도 사람은 정말 원래 타고난 모습, 가지고 온 성격대로 살다가는 가 싶어 진다.    

 

열차역에서 뿔뿔이 헤어지며  
건강하게 지내다 서로 보고 싶을 때
다시 보자 하고 헤어졌다.


친구가 청도 미나리를 사 와서 가마솥에 한 수육이랑 맛있게 먹었다.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그리 좋아하시던 청도 한재 미나리다. 소띠 엄니는 정말 미나리를 좋아하셔서 저렇게 소쿠리에 수북히 담아서 맛나게 잘 드셨다.

옛날친구를 만나니 그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내 유년시절은 울 엄니 3~40대 꽃띠시절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친구가 만들어준 꽃무니 가방은 도서관 책 빌리러 다니는 용으로 잘 쓴다. 마스크와 화장품 넣는 작은 주머니



~ 봄이 오면
경주 내 고향마을로 가서
친구들이랑 봄 마중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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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짧은 글속 깊은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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