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R 타고 바이칼 호수 보러 가기
TSR [ Trans Siberian Railway ] ~ 러시아의 모스크바부터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로지르는 9,288km의 세계 최장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2016년 8월의 어느 아침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간 버킷 리스트로 간직해 오던 TSR 타기를 실행하기 위해!
나는 좁은 나라에 갇혀 사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말을 타든 기차를 타든 광활한 대륙을 달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내게 늘 있었다. 그런 내가 지구상 제일 큰 대륙 아시아를 횡단하는 기차를 타러 가기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었다.
삼면이 바다로 에워 쌓인 데다 위로는 북한으로 막힌 우리 대한민국 ㅠㅜ 그래서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우리는 해외로 가려면 반드시 비행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해서 나는 내가 사는 지방도시 터미널에서 리무진을 타고 인천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갔고 거기서 기차를 탔다.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백 년 전에 중국에게 뺏은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 해변에 노을이 지고 있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드뎌 타 보는 TSR 침대칸이 우선 신기했다. 동행한 사촌언니 둘은 아래쪽에 짐을 두고 나는 위층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나흘 밤낮을 달려도 자다 깨다 먹고 수다 떨며 가느라 지겹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스치며 지나는 차창 밖 풍경들을 무심히 보면서 그 땅을 말로 기차로 달리던 우리 조상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기차 중간중간 정거장에 내려 그 지역 특산품 과일이나 말린 절인 생선도 사 먹으며 가니 지루하지 않았다. 빨간 캐비어를 언니들이 안 먹어서 나 혼자 빵 발라 먹다 보니 나중 물리고 질렸다.
바이칼 호 (Baikal) -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성스러운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바이칼 호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시 부근에 위치하며 깊이가 1,6 k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호수의 표면적은 북미 5 대호의 13%밖에 안 되지만 수심이 깊어 물의 양은 5 대호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더 많아 ‘세계의 민물 창고’라고 불린다. 호수 길이는 636㎞, 평균 너비는 48㎞로, 면적이 남한의 1/3이나 된다.
바이칼 호는 아직 다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곳에 우리 민족의 뿌리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품고 있다.
호수 주변의 소수 민족 중 대표적인 부랴트족은 인구 40만인데 이들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설화를 갖고 있고, 특히 그들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속과 거의 비슷하다.
오색 천 조각을 두른 나무 말뚝은 우리의 솟대나 서낭당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아기를 낳으면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전통도 우리와 비슷하다. 강강술래춤도 그러하고,
예전의 샤먼이 썼던 모자는 사슴뿔 모양으로 신라의 왕관과 비슷하다.
바이칼 호는 지구가 갈라질 당시인 2500만~3000만 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북쪽의 땅은 융기하고 남쪽은 벌어지는 단층 운동에 의해 형성됐다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내 답답하던 가슴을 씻는다....
호수 안의 27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인구 3천 명의 알혼섬,
그 섬의 높은 지마봉 1276미터에는 우리 민족의 색동 단청 같은
오방색 색색 갈 천이 나부끼는데 아~ 정말 이곳이 민족의 시원지 아닐까?
자작나무 일명 밝달나무 숲에는 장승도 있고 정말 우리 것과 흡사하다.
알혼섬 점심시간, 식당 서빙하는 처녀아이 입만 안 열면 완전 한국인이라
카레이스키 고려인이냐? 물어보니 원주민 부랴트인이라고.
어쨌든 만주, 몽골인과 베링해를 건너갔던 어메리컨 원주민이랑
우리의 DNA가 같다니 어쩌면 우리 모두 그 옛날 같은 조상을 둔 것일 것일지도.
구 소련 소비에트 연방에서 15개국을 독립시켜 주고도 남은 러시아 영토는
그래도 남북한의 78배보다 크고 미국보다 1.8배로 크다.
'시베리아의 파리'란 별명을 얻게 된 문화의 도시 이르쿠츠크
그 옛날 파리까지 나폴레옹을 몰아내었던 러시아의 청년장교들이 파리를 보고 러시아도 그렇게 자유롭고 새로운 나라로 만들어 보려고 꿈꾸었다. 해서 그들은 12월 혁명을 도모했으나 애석하게도 배신자들의 밀고로 실패했다. 결국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제일 먼 동쪽인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했고 이곳에 와서 그들이 꿈꾸었던 아름답고 멋진 문화의 도시로 만들어 갔다. 그래서 도시는 '시베리아의 파리'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유배를 갔던 청년장교들의 부인이야기였다. 부인들이 남편을 따라 유배를 가려면 귀족작위와 재산, 재혼의 가능성 같은 권리를 포기해야 했는데 정작 그 모든 걸 뿌리치고 열녀처럼 남편을 따라 유형지로 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120명 장교들 중 불과 11명의 부인만 남편을 동행했다니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이는 무얼 의미하는지?... 아마도 그만큼 1830년대 생활상은 힘들었고 부인들의 의식 수준도 지금과는 달랐다고 본다.
이르쿠츠크의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도 방문했다. 교회 모습은 둥근 돔식 지붕과 밝은 색채가 서유럽 쪽 교회보다 훨씬 밝고 부드럽고 교회의 분위기도 더 정적이고 고답적으로 느껴졌다. 러시아는 인구 1억 4천 명 중 백인인 러시아인이 80%이고 나머지가 기타 소수민족인데 우리 고려인도 약 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인 지 왠지 서유럽의 백인들이나 문화보다는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대륙이기도 해서 더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깥모습은 급속한 현대화를 이룬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보다 낙후되어 보이기도 하나 사람들은 나름 순수하고 특히나 대국의 광대한 자연이 주는 느낌이 편안하고 좋았다.
5월이 되어야 완전히 얼음이 녹는다는 바이칼 호수, 다음에는 2미터 두께로 얼음이 어는 호수 위로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는 겨울의 바이칼 호수로 한번 더 만나고 싶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 세대에 통일이 되어
부산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더욱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