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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07. 2024

20년만의 초등동창회

고향 초등학교는 내가 태어나던 해

    

고향 초등학교는 내가 태어나던 해 1963년에 개교를 했다. 꽃내 라는 우리 말이 한자로는 화천(花川)인 경주시 외곽의 농촌 벽지학교고  폐교된 지 오래다.


그런 초등학교 동창회가 해마다 삼일절이면 경주 보문단지에서 열린다.      

그간 나는 직장, 가정생활 여타의 이유로 40대에 딱 한 번 참석하고 못 갔다. 그러다 이제 나이 들어 옛 친구들 얼굴도 보며 살아야겠다 생각하던 차 친구들 단톡방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다니던 학교에서 대구로 전학 갔기에 졸업생은 아니다. 그러나 동창회 규정에 재학생도 가능하다고 되어있고 무엇보다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동창으로 여기는 그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베이비붐 마지막 세대인 우리 학년은 해거리처럼 위아래로 인구밀도가 높은 학년 사이에 끼여 유독 숫자가 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순해서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도 없이 조용히 보냈던 거 같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가는 나를 당연한 듯 받아주고 일 년 치 회비만 더 내면 된다는 회장 말에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위하여 전날 동기회를 하고 같은 보문단지 내에서 이튿날 총동창회를 하는 식으로 해마다 해 오고 있었다.      


강원도에 사는 손 큰 회장이 00야 뭐 먹고 싶냐? 했지만 메밀전병이라고 말은 안 했는데 전병과 메밀전과 갈비찜을 군대 식량처럼 많이도 준비해 왔다.

시간 되니 하나둘씩 모여드는 친구들의 얼굴은 어렸을 적 그대로인데 세월의 흔적만 서렸을 뿐이다. 가물거리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얼싸안고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연출한다.      


경주 시내에서 식당 하는 친구가 총무인데 그녀도 큰 손이다. 학교 때 나는 맨 앞줄에 앉고 친구는 뒷자리 앉았던 키도 마음도 큰 친구다. 점심 손님 수십명 고등어 조림해 주고 그 바쁜 와중에도 우리 먹을 거를 따로 만들어왔다. 밤새워 놀다 새벽에 다시 가서 식당일 준비해놓고 오는 친구, 친구야! 부디 이제부터는 몸 아껴가며 일하고 우리 건강하게 오래 얼굴 보며 살다 가자.      


학교 때는 앞줄 꼬물이 부대, 다 코도 흘리고 손수건 가슴에 달고 입학했더랬지. 어느새 자라 산업의 역군 되고 아빠 되고 아직도 일선에서 가장 노릇을 하는 친구야. 두세 명씩 자식 낳아 다 공부시켜 출가시키고 다들 훌륭하다. 친구들아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자신도 돌보며 인생을 즐기며 살다 가자.      





어렸을 적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풀었다. 희미한 기억들, 그때 내가 그랬는데 너 기억하니? 그땐 내가 왜 그랬지, 정말 미안하다 친구야 하며 풀었다. 맛있게 많이 먹어 부른 배를 두드리며 윷놀이를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동네마다 습자지로 꽃을 만들어 고깔모자를 만들어 쓰고 행진하며 등교했던 기억. 작약꽃이 피던 계절이었다. 꽃을 만들던 친구집 뒷마당에 만발했던 작약꽃이 같이 떠오른다.

그때 청백전 하며 신나게 놀았던 거처럼 윷을 놀았다. 성격은 천성이라더니 윷놀이 하면서도 어찌 어릴 적 성격이 그대로 나오는지 나는 잃어버린 시간 속의 옛동무를 다시 찾은 마냥 반갑고도 즐거웠었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는 친구. 예쁜 치매라지만 시어머니얘기를 코믹하게 하며 웃는 친구의 웃음은 더 예쁘고 보살이 따로 없다. 이제는 무릎 수술도 얘기할 정도로 몸이 아픈 친구들 얘기를 들으니 마음도 아팠다. 일터에서 손가락을 다쳐서 붕대를 감고 와서도 설거지하는 친구야, 말로는 하지 말라 하면서도 선뜻 대신하지도 않는 나는 뭔가 싶었다 ㅠㅜ
 
 어느덧 우리도 이제 인생 황금기 가을로 접어드니 일 년에 한 차례 동기회 봄가을 놀이 등 이제는 서로 만나며 살다가자꾸나. 여름에 강원도 친구집에 가서 옥수수도 삶아 먹고 다슬기도 줍자고 미리 날짜를 정하고 왔다.






놀라운 소식은 폐교된 지 26년째인 모교는 2026년 3월에 다시 열린다는 거다. 시골 폐교가 다시 개교하는 일은 참으로 드문 경우다. 그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신경주 Ktx 역사가 우리 동네에 들어선 덕분이다. 해서 지금 역사 주위로 아파트와 건물도 생겨서  다시 초등학교가 세워지게 되었으니기쁜 소식이다.   

  

전날 밤 동기회도 좋았지만, 이튿날 동창회에서 만나는 언니, 오빠들도 반가웠다. 나는 내 친오빠와 사촌오빠, 언니, 고모, 동생들을 다 만났다. 집성촌이었던 우리 마을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일가친척들이 다 한 고장에서 살던 시절이다. 빙 둘러앉아서 얘기하다 보면 김가인 내가 송 씨, 박 씨 친구와도 친척이 되는 것이 할머니들끼리 걸리고 친 외가가 걸리니 그렇다. 그리고 평균 자녀들이 5명이던 시절 서로 자기 언니, 오빠랑 친구의 언니, 오빠가 또 친구니 시골동창회는 정말 확대된 가족 친지 모임 비슷하다.     


동창회랑 딱 맞는 노래 ‘천년 지기’가 울려 퍼지는데 나도 덩달아 어깨춤이 절로 난다. 내가 12회인데 2회 선배님이 나오셔서 노래를 부르시며 자신의 전속무용단인 제수씨가 함께 나왔다는데 그녀도 70대 할머니다. 시숙이 노래하고 제수씨가 춤을 춰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니 정말 초등학교 동창회라서 가능한 일이다. 유년의 고향친구들과  순진 무구한 그 시절의 자연스러움이요 편안함이다.     

 

신기했던 것은 동창회 회장이 깃발을 흔들며 입장하는데 순간 내게 전율이 일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옛 서라벌 동산에 화랑과 원화가 모여 함성을 울리던 장면같은 것이 떠올랐다.     


이제는 칠십이 넘은 선배들이 아직도 어린 시절을 회억하며 해마다 200명 이상이 모이는 이  학교의 동창회는 유별나게 끈끈한 지도 모른다.

한 학년이 한 반 뿐이고 한 해 졸업생 수가 평균 40명 밖에 안되는 시골학교였다.

 마지막에 교가를 부르며 마쳤는데 어린 시절 불렀던 교가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도 신기했다.


가사 중 ‘한 탯줄에 태어난 감자알처럼 정답고 다정한 00 어린이’란 구절이 있다. 나는 이 구절을 주렁주렁 달린 감자알을 상상하며 불렀을 텐데 새삼 정답게 느껴졌다. 교가는 향토 시인 박목월 시인께서 작사하시고 유명작곡가 나운영 선생님이 작곡하신 걸 나도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오니 내 마음도 배부른 듯 행복했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아 있으니 이제 과거도 현재로 녹여서 그렇게 미래시간을 채우며 살다 가려한다.      




박목월 작사 교가와 작약꽃이 우리학교 교화였다



☆ 김별 작가의 연재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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